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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Aug 05. 2023

쓸 게 없을 때

서른 번째 글: 정말 쓸 게 없을 때에는 이렇게라도 써 봅니다.

집 앞에 있는 파스쿠찌 커피 매장에 왔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오늘은 문득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 왔다. 여기에서 100여 미터쯤 걸어 내려가면 스타벅스 매장이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곳은 너무 시끄럽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구상이 잘 안 되거나 한창 글을 쓰다 막힐 때면 슬슬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만큼 시끄러운 곳이기 때문에 마음먹고 글을 쓰고 싶을 때에는 잘 안 가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파스쿠찌에 왔는데, 노트북을 열자마자 막혀 버리고 말았다. 뭘 쓸까, 하며 아무리 고민해 봐도 뾰족이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5분의 힘이 사라지려는 찰나였다. 이런 일이 잘 없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게 없는 모양이다. 노트북을 그냥 덮고 나가려다 이럴 때 특효약인 '주변에 보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쓰기'에 돌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쓰기로 한다.




내 맞은편에 세 팀의 손님이 자리에 앉아 있다. 한 팀은 남자 한 명, 또 다른 한 팀은 여자 한 명,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여자 세 명이다. 물론 내 등 뒤에도 중년의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손님이 있긴 하지만, 반복적으로 뒤돌아 주시하는 건 오해를 사기 좋으므로, 이들은 일단 내 시야에서 제외한다.


남자 한 명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아메리카노로 보이는 음료와 물 한 잔이 놓여 있다. 뒤의 편안한 자리에 드러눕다시피 한 채 열심히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 품이 조금은 넓은 반바지 차림에 검은색 반 팔 티셔츠, 전형적인 동네 아저씨 차림이다. 나이는 대략 마흔 살쯤 되어 보인다. 샌들을 신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맨발인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에 얹어놓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우측으로 3미터 정도 옆에 앉은 여자 손님이 남자 손님의 발 때문에 찡그리고 있다는 건 모르는 눈치다. 내가 아는 사이라면 귀띔이라도 해주겠지만, 그런 간단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니 영락없는 아재다. 과연 그는 지금 폰으로 무엇을 보고 있을까? 표정에 별 변화가 없는 걸로 봐선 유튜브 등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혹시 전자책이라도 읽고 있는 건가 싶지만, 만약 그렇다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슬슬 궁금해질지도 모르겠다.


3미터 정도 오른쪽 편에 홀로 앉은 한 여자는 시쳇말로 카공족이다. 아 참, 깜빡 잊을 뻔했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엔 나 역시 카공족으로 보일 것이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때마침 그녀가 쓴 마스크는 이럴 때 효력을 발휘한다. 한참 전부터 오른쪽에 앉은 한 남자가 무릎에 신발도 신지 않은 한쪽 발을 올려놓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마스크 의무 착용 기간은 아니나 요즘 커피 전문 매장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그녀의 외양에 대한 묘사는 더 진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이는 대략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한 번도 여기 와서 화장실을 가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2층에 화장실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앉아 있던 그녀는 방금 전 화장실을 갔다 오자마자 짐을 챙겨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내가 너무 쳐다봐서 불편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쳐다보면서 단 한 번도 눈이 마주치지 않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좋은 자리를 놔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뿐이다.


마지막 한 팀인 여자 세 명은 아무래도 오늘 얘기의 주인공이 될 것 같다. 일단 소란스럽다.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얘기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 것은 아주 잠깐이라도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면 여지없이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흔히 말하는 멀티태스킹의 달인이 아닐까 싶다. 우리 같은 남자들은, 아니 최소한 나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 휴대폰을 볼 때에는 휴대폰만 봐야 하고,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 때에는 누군가의 얼굴만 쳐다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쓸 때에는 옆에서 누가 말만 시켜도 글은 쓸 수 없게 되는 게 정상이다. 아주 자유자재롭다. 능수능란하다. 삼각형 꼴로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중간중간에 휴대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들은 스물대여섯 살 정도로 보인다. 물론 나를 등지고 앉아 있는 그녀는 몇 살 정도로 보이는지 알 수 없지만, 서로 말을 놓은 것으로 봐선 친구 사이임이 틀림없다. 지금은 빵을 하나 시켜놓고 칼로 크림을 떠서 바르고 있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그중 한 여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다. *월 *일에 저희 예약한 거 말인데요, 하며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아마도 세 명이서 어딘가로 휴가를 떠날 계획인 모양이다. 그러면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 될 테다. 모자를 쓴 한 사람과 모자를 쓰지 않은 또 다른 한 사람은 폰을 보면서 대화하는 신공을 발휘하고 있고, 또 한 명의 모자를 쓴 여자는 빵을 손에 든 채 자신의 얼굴을 보지도 않는 두 여자에게 연신 말을 걸고 있다. 본의 아니게 자꾸 쳐다봐서인지 모자를 쓰지 않은 여자가 아까부터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다. 일단 인상만 보면 어딜 가든 공무원 생활할 것 같이 보이는 나라고 했다. 조금만 유심히 지켜보면 나를 처음 보는 사람도 대뜸 내게, 초등학교 선생님이죠,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치한이나 불량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텐데, 내가 너무 긴 시간 동안 실례를 한 모양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매장 내에 있던 사람들을 살피며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장시간 동안 본의 아니게 내 관찰의 대상이 되고 만 한 분의 남성과 네 분의 여성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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