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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4. 2024

31년 전 그날

272일 차.

해마다 오늘이 되면 눈시울이 시큰해지곤 합니다. 무슨 날이냐고요? 31년 전에 제가 군입대한 날입니다. 으레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저 역시 입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삼수까지 해서 입학한 대학에 영 적응을 못하다 겨우 흥미를 붙이고 있던 참이라 하던 일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제 옆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녀는 입소하던 날 훈련소까지 따라와 제 앞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군대 갈 때 우는 여자 친구가 제일 먼저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는 뭐 그래서 불길하다 따위의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우는 그녀를 두고 저는 연병장으로 가야 했으니까요. 어쨌건 간에 결과만 놓고 보면 그 우스갯소리가 틀린 말이 아닌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신세계였고 별천지였습니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회, 상식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선임의 기분에 따라, 또 지휘관의 감정에 따라 마구 휘둘리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버티고 나가면 밖에서 못할 일은 없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에 비해 요즘은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구타나 괴롭힘 등은 거의 사라졌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시키지 않는 분위기라고 하더군요. 일과 시간 후엔 휴대폰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요. 그래서 요즘 군대가 군대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꼰대'인 걸 마치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 때는 말이야'하며 무용담을 늘어놓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에 간 것에 대한 회한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일로 인해 떠나가긴 했지만, 그렇게 갈 사람이었으면 그 일이 아니어도 갔을 테고요.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부대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들을 보고 있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일입니다.


사실 그때는 제가 어려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그 슬픔에 빠져 함께 온 부모님의 마음을 돌아볼 심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자식 키워놔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하고 만 꼴입니다. 그런 게 사람의 인생인 모양입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마음을 11개월 전, 아들이 군 입대하던 날에 비로소 느꼈으니까요. 아들을 부대 안으로 밀어 넣고 돌아오는 마음이 이렇게 슬프고 헛헛한 것이구나, 하며 온몸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아들이 군 입대하던 그즈음에 누군가가 제게,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힘들더냐고 묻더군요. 스스로 입대하는 것과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것 말입니다. 두 가지를 다해 보니, 자식을 보내는 게 더 슬프고 마음이 아리더군요. '아, 내가 차리리 군대 한 번 더 가고 말지'라는 마음이 절로 생길 정도였습니다.


사실 군 입대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질 듯 심각한 일 같아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그 어느 누구도 열외가 없는 일입니다. 간혹 면제를 받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군 면제를 받을 정도라면 그만큼 치명적인 사유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장래를 보더라도 군 면제 이력은 반길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남자들끼리 종종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입대할 기회가 생기면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미쳤냐고,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은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것도 다 하나의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오늘이 되면 마음이 신산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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