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지하철을 타려고 승강장에 내려와 있습니다. 운행정보 현황 안내판을 보니 두 정류장 전에서 열차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매일이 같습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열차에 오릅니다. 한 번도 기관사의 얼굴을 본 적은 없으나 아마도 같은 사람이 운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오늘이 주말이니 이틀이 지나고 난 다음인 월요일에도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을 겁니다.
똑같이 11개의 역을 지나야 합니다. 운행 소요 시각은 총 18분, 길지도 그렇다고 해서 그리 짧지도 않은 시간입니다. 종점까지 가지 않는 한은 아무리 피곤해도 좌석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것도 부담이 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이 안 좋을 때를 제외하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하철에 오릅니다.
한창 글을 쓰다 잠시 곁길로 빠져 듭니다.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오늘 해야 할 일이 떠오릅니다. 대개는 한 편의 글을 쓰고 난 뒤에 의식적으로 갖는 시간인데 오늘은 불시에 이러는 걸 보니 느낌이 심상치 않습니다. 생각만큼 글이 풀리지 않을 거라는 징조인지도 모르니까요.
잠시 딴 데 정신을 팔아서일까요? 벌써 절반을 지나왔다는 방송이 나옵니다. 이제 하차역까지 남은 역의 개수는 다섯 개입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봅니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띕니다. 안면은 있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영 모른 척하고 있자니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인사는 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니까요. 서로 눈빛으로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만 할 뿐입니다.
어느새 왜관역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낡아빠진 무궁화호 열차입니다. 점점 배차 시간 간격도 늘어나고, 곧 신설될 대구 구미 간 전철의 영향으로 대폭 축소 운영될 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나의 객차에서 다른 객차로 건너갈 때마다 통로에 있는 화장실에선 악취가 풍겨 나옵니다. 연식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폐기 처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기차가 운행되는 시각도 18분입니다. 지하철이야 잠이 들어도 기껏 해 봤자 삼사십 분 더 가지만, 기차는 사정이 다릅니다. 깊이 잠에 빠지면 출근 때는 서울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퇴근 때에는 부산에서 눈을 뜰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탈 때보다 더 긴장해야 합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왼쪽 편으로 80미터 남짓한 거리에 시원스레 뻗어 있는 고속도로에선 자동차 경주라도 하듯 차량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낡은 기차를 이겨내는 차는 없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국도 위엔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차들이 지나갑니다.
약간 각도가 있는 모퉁이에 기차가 접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어 하차 안내 방송이 나온다는 신호입니다. 이 구간에만 오면 차창을 통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기차의 앞쪽이나 뒤쪽이 보입니다.
드디어 방송이 나옵니다. 이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는 마지막 신호입니다. 곧 열차가 서고 승강장에 내려서는 순간부터 저의 하루는 오늘도 똑같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