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5.
오늘의 문장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없다. 읽기란 자기 자신만큼 읽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 개개인은 자신의 가치관·세계관, 그리고 자신이 씨름하는 물음들이나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 등에 따라서 한 책으로부터 각기 다른 것들을 얻는다. 어떤 이는 니체로부터 심오한 생명철학을 찾아낸다. 반면 '나치주의의 공식 철학자'라고 일컬어질 만큼 니체의 글은 나치 사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정황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고전'이란, 그런 의미에서 허구적이다. 하나의 책은 거대한 도시와 같다. 큰 거리·작은 골목·유명한 장소·무명의 장소 등 무수한 공간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도시처럼, 다양한 개념·세계·가치를 담고 있다. 한 도시를 다룬 여행 책자의 안내문이 그 도시의 무수한 다층적 모습을 담아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표피적인 안내서는 그 도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마치 그 여행 책자에 열거된 곳들을 겉핥기식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그 도시를 안다고 착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책 읽기에서는 '나는 어떠한 문제의식 및 물음들과 씨름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출발점이다. '나만의 물음'이 부제 할 때, 아무리 추천 도서를 모두 읽었다 해도 자신을 성숙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지적 자양분을 얻기는 어렵다. ☞ 강남순, 『정의를 위하여』, 2017, 동녘, 211쪽
나의 이야기
한때 꽤 치열하게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8년 2개월 만에 무려 1천 권의 책을 읽었던 때였습니다.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시들해져서 책을 덜 읽는 건 아닙니다. 몇 권을 읽었는지 하나하나 체크해 가며 기어이 목표를 이루었을 때 다 부질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많던 책들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였던 정진홍 씨의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유명한 예닐곱 권의 책에 대한 리뷰, 즉 서평을 담은 책입니다. 사실 책에서 논하고 있는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런 류의 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저는 이 책에서 색다른 감흥을 받았습니다. 정진홍 교수가 어떤 책이 고전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지를 명쾌하게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정진홍 교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고전의 반열에 드는 책을 반드시 고전이라고 일컬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령 서울대 추천 고전 100선 혹은 200선이라고 할 때 그 각각의 책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해서 그것이 제게도 무조건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겠습니다. 일례를 들어 제목만 대도 누구나가 아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책들 중에 『설국』,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 등은 제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노인과 바다』, 『1984』, 그리고 『어린 왕자』 정도는 참을 만했습니다. 어쨌거나 앞서 말한 책들을 읽은 뒤에 저는 후회했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을 정도로 제겐 최악의 책들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지인에게 얘기했더니, 그건 제가 고전을 이해하는 안목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건 그저 무식하다는 말로 들려 다소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정진홍 교수의 책에서 저는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는 목록화된 자료, 즉 정형화된 고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전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마다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고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다시 읽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고(재독), 또다시 읽게(삼독) 되는 그 책이 바로 고전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논리를 따르자면 다른 사람들이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해서 저까지 감명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게 됩니다. 즉 그런 책들을 읽고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무지하다거나 혹은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저에게 『설국』,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 등은 더는 고전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고 했으니, 이 책들은 제게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오히려 『반지의 제왕』, 『내 젊은 날의 숲』, 『독고준』, 그리고 『조드』 등이 제겐 엄연한 고전이 되는 것입니다.
참 말이 난 김에 제가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독서법을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종종 책을 읽다 보면 내용과 관련 있는 다른 책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언급해 놓은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으로 저 책으로, 다시 저 책에서 또 다른 책으로 건너가며 읽었습니다. 실컷 읽다가 다음에 읽을 책이 뭔지 고르려 할 때 저로선 꽤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독서법을 적용하면서 맨 처음 읽었던 그 책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독서법을 ‘하이퍼링크식 독서법’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이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집의 책이 많이 늘어나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색다른 독서를 해보고 싶다면 이런 방법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