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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04. 2024

글을 쓸 용기

사백 마흔세 번째 글: 얼굴이 두꺼울수록 좋습니다.

글쓰기라는 건 머뭇거리고 있으면 쓸 수 없습니다. 또 내가 쓴 글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걸 생각한다면 마찬가지로 쓸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중요한 건 글을 쓴다는 것이지 그 외의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왜 그렇게 글을 못 쓰게 하는 요인이 많을까요? 그냥 쓰고 싶다면 쓰면 되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사람처럼 여간해선 글을 쓰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사실 어떻게 보면 글을 쓴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건 마치 수백 혹은 수천 명이 지나다니는 번잡한 곳에서 마이크도 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저음부에서 생각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 고음 파트에서 소리가 갈라지거나 찢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박자나 음정이 안 맞는 불상사가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기껏 큰마음먹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겨우 그 정도의 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면 누군가에게서 제지를 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어딘가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노래를 시작했다면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불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무색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을 했다면 주변의 여건이 어떻건 간에 글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지요? 애써 쓴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흉을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요? 걱정은 사서 하는 게 아닙니다. 일단 쓰고 보면 길은 열립니다.


극단적인 경우엔 그 어느 누구도 '내 글'을 '나처럼' 성의 있게, 꼼꼼하게 읽는 사람이 없다고 믿으면 됩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명색이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의 글보다 더 관심을 갖는 글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몇몇 분들은 '내 글'을 읽고 정성스럽게 댓글도 답니다. 그런 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러 이상하게 쓰거나 못 썼더라도 그 정도는 감안할 만큼 우리와 나름의 친밀감이 형성된 분들입니다.


최소한 글을 쓸 때는 얼굴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좋습니다. 뻔뻔하게 글을 쓰고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뻔뻔하게 대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누군가는 노벨문학상을 받는 반면에 누군가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게 글이고 또 작품입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쓰레기통 속에 처박히고 만 작품이 먼 훗날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글을 쓸 때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 그러한 용기는 뻔뻔함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야! 넌 뭘 이런 걸 글이라고 썼냐?"

"시끄럽다! 그러는 넌 글이라도 썼냐?"

"고작 이 따위 글이라면, 난 내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때까지 안 쓰겠다."

"그래, 넌 그렇게 해라. 난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계속 쓸 테다."

이런 생각으로 쓴다면 그 어떤 글이라도 우리가 못 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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