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때라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만 있으면글을 쓸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넉넉한 두께의 종이와 잘 나오는 펜 등이 구비되어야 글을 쓸 수 있었던 환경과 비교하자면 정말이지 요즘처럼 글을 쓰기 좋은 때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잔잔하게 음악이 깔린 커피 전문 매장에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 중에도 글쓰기가 가능한 것은 물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도 사람들과 부딪치지만 않는다면 한동안 서서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 시끄럽고 사람의 발길로 미어터지는 시장통 한가운데에서도 마음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건 이미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수단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더는 펜과 원고지 혹은 노트에 글쓰기를 의존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예전 같았으면 노트나 원고지를 펼쳐야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평평한 바닥이나 하다 못해 일정한 넓이의 책상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책상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식탁이라도 있어야 글쓰기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앉아서만(경우에 따라선 기껏 해봤자 엎드리거나 서서) 쓸 수 있었던 글을 이제는 누워서도 쓸 수 있고 심지어 걷는 동안에도 쓸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책상이 더 이상은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에게는 사실 책상조차 필요하지 않다. 당신의 책상은 지하철에도 욕실의 변기에도 있을 수 있다. 생각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 책상은 어디에나 있다.
미국의 소설가인 조슈아 페리스가 한 말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글을 쓰기 위해 책상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아니 '책상조차'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반드시 필요했던 그 물건이 없어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당장 우리 주변을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글쓰기라는 게 사실은 육필로 쓰는 게 더 가치 있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리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시대라면 그것도 반드시 정설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긴 합니다.
조슈아 페리스는 하나의 단서 조건을 내겁니다. 생각에 몰두할 수 있다면, 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전 여기에서 글을 쓰는 데 있어,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혹은 더 나아가서는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슈아 페리스의 명언을 이런 식으로 바꿔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는 사실 책상조차 필요하지 않다. 당신의 책상은 지하철에도 욕실의 변기에도 있을 수 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생각에 몰두할 수 있다면 책상은 어디에나 있다.
더는 눈앞에 없는 책상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들고 선 자리에 눈에 보이지 않는 책상이 가로 놓여 있고, 누운 자리에서도 책상은 우릴 마주 본 채 놓여 있습니다. 아마 그 책상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