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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09. 2024

유려하게 쓸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열 번째 명언: 쌓고 쌓다 보면 글의 내공도 쌓일 겁니다.

무슨 일을 하건 간에 첫 술에 배부를 리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사람들은 가능하면 첫 술에 배불렀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마련입니다.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데 그걸 마다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드는 생각 중의 하나이니 그저 욕심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신춘문예나 문학상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합니다. 물론 그 작품을 완성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과 고생을 했겠지만, 아무튼 그 작품으로 단번에 등단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까지 듣습니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는 것은 물론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행복한 기분을 누리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개 개인이 글쓰기 하나로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셈입니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난다면 아마도 저는 기고만장한 나머지 글쓰기의 두려움이나 어려움은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신문사나 잡지사에 몇 번 원고를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매해 보냈던 것은 아닙니다만, 아마도 횟수로 따지면 십수 번은 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러던 중 아주 작은 공모전에서 운 좋게도 최종심까지 올라 신문에 당당히(?) 제 이름 석 자와 작품 심사평이 실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딱 한 번의 행복했던 기억을 제외하면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그때 주변에선 다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깝다고, 한 끗 차이인데 조금만 더 잘 썼다면 제가 당선이 되었을 것이라고 얘길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때 당선된 분의 작품을 읽어보고 나서 전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말처럼 당선작과 제 작품이 한 끗 차이가 아니라 천지 차이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 그 당선작을 보며 유려함이라는 측면에서 제 작품은 당선작과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작가의 장애물에 봉착하는 이유는 글을 쓸 수 없어서가 아니다. 유려하게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기 때문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애너 퀸들런이 한 말입니다. 매년 미국에서 언론과 문필 분야에서 뛰어난 대중적 공로와 업적을 지닌 사람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쩌면 그녀의 말에 신뢰감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유려하게 쓸 수 없다는 것에 결코 절망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유려함을 갖춘다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여러 작가님들에게 글을 정말 유려하게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꼽아보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작가들을 거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누군가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고, 더러 몇몇 사람들이 싫어하는 작가도 어떤 분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갈리는 게 당연한 것이라면, 우린 결국 유려하게 쓴다는 것 자체가 기준이 꽤 모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 우리가 글을 유려하게 쓰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할 이유 따위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심지어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다면 그(그녀)를 위해서 우리가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한 것입니다.


기준 자체가 모호한 글의 유려함이라는 건, 쉽게 갖춰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만한'이라는 말로는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수 있고 더러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이 '유려함'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냥저냥 평범한 글쟁이로 남게 될 소지도 있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글쓰기 그 자체를 좋아한다면 그냥저냥 평범한 글쟁이가 되면 어떻고, 또 몇몇 사람들에게만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된들 어떨까요? 그 어느 쪽도 나쁠 건 없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글쓰기라는 건 충분히 달려들어 볼 만한 일이니까요. 아마도 언젠가는 저에게도 유려한 글을 쓰게 될 날이 오지 않겠나, 하는 긍정적인 바람을 가져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혹시 유려하게 쓸 수 없다고 해서, 혹은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절망할 이유 따위는 없다는 걸 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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