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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16. 2024

글쓰기에서 희열을 느끼려면

열한 번째 명언: 글을 쓸 때 미디어는 모두 끄세요.

큰마음먹고 4백 자 원고지 뭉치를 사들여 놓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책상의 한쪽 구석에서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언제든 펼쳐 바로 쓸 수 있도록 여태껏 치우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원고지를 펼쳐서 글을 쓸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하며 아예 글 자체를 노트북으로 쓰고 있어서 좀처럼 원고지를 활용할 기회는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메모장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늘 곁에 두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목적으로 스프링 노트도 올려놓았습니다. 그 노트는 좌측에 스프링이 달린 일반적인 노트가 아닙니다. 스프링이 위에 있어서 글을 쓸 때 조금도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자, 이제 연필 혹은 볼펜 몇 자루만 있으면 글쓰기 준비가 다 된 겁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요? 글쓰기의 제1차 도구였던 노트와 펜이, 자신의 자리를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게 물려주고 뒤로 나앉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아직도 펜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노트나 원고지를 고집하고 있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육필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큼 더 대단해 보일 정도로 저 역시 육필로 글쓰기는 여전히 저의 하나의 로망이기까지 합니다.


각종 정보통신기기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육필로 원고를 써서 출판사 등에 투고했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온라인상에 글을 올려 즉각적으로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글쓰기의 하나의 목적이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글쓰기의 수단이나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지, 목적이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온라인상에 글을 게재하려면 우린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글을 쓸 때는 인터넷, 휴대전화, 텔레비전도 모두 꺼버리고 오직 '나'와 '글'만이 남는다.
그런 집중력이 글쓰기의 진정한 희열이다.


적지 않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인기 작가 정여울 씨가 한 말입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글을 쓸 때에는 인터넷, 휴대전화, 텔레비전을 과감히 끄라고 요구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곳엔 '나'와 '글'만 남는다고 합니다. 나, 그리고 글만 남았을 때 비로소 글을 쓰는 집중력이 생기고, 바로 그런 집중력에서 글쓰기의 진정한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우린, 인터넷과 휴대전화 혹은 노트북이 있어야 글쓰기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인기 작가가 한 말이니만큼 그녀의 말을 따르면 뭔가가 소득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막상 그녀의 말을 듣고 각종 정보통신기기의 전원을 오프(물론 그녀가 말 그대로 전원을 끄라고 한 건 아니겠지만)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원은 유지한 상태에서 끄는 것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하여 언젠가 소설가 중의 한 분과 우연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평소에 제가 궁금했던 것 몇 가지를 물어봤던 일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선생님! 소설을 쓰시려면 당연히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읽으시는지요?"

"네, 맞습니다. 저도 틈만 나면 책을 끼고 살긴 합니다. 제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읽기도 하고, 또 아는 작가님들의 책이 나오면 공부하는 셈 치고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절대 책을 읽지 않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게 언제인가요?"

"제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집필을 시작해서 퇴고를 거쳐 탈고에 이르는 동안은 가급적이면 책을 읽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이때에도 간혹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일단 원칙은 그렇습니다."

"집필 기간에 독서를 하지 않으시는 별다른 이유가 있으신지요?"

"집필 기간에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 책의 내용이나 흐름이 제 작품의 집필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작가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고, 제 주변의 글을 쓰시는 분들은 거의 예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작품을 집필 중인 어떤 분들은 컴퓨터를 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TV도 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더러는 그 흔한 음악도 듣지 않고 라디오부터 치우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대화를 나눴던 소설가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정여울 작가의 말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여울 작가가 미디어를 모두 끄라는 것은 그냥 물리적인 전원을 끄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걸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트북, TV, 스마트폰 등의 전원이 켜져 있든 말든 글을 쓸 때에는 최소한 마음이라도 정보통신기기에서 신경을 차단하라는 얘기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저 같으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켜놓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쓸데없는 가십거리 등을 검색하거나 표제 뉴스 등을 클릭하며 돌아다니는 무의미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여울 작가의 말을 그런 취지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저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고 해놓고 웹서핑이나 뉴스 읽기 등으로 시간을 소일하는 모습을 적지 않게 봐왔기 때문입니다.


뭔가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중을 하다 보면 주변의 모든 흐름이 뚝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길을 가다 첫눈에 반한 사람을 만났을 때 주변의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그(그녀)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집중해서 글을 쓰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그렇게 글만 쓰게 됩니다.


혹시 그것이 언제였든 이런 식의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나'와 '글'만 세상에 혹은 이 작은 방 안에 남아 있는 듯 오롯이 글 쓰는 재미를 느끼며 글을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없다면 어느 정도는 물리적이면서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각종 정보통신기기가 옆에 있다고 해도 그쪽으로 신경만 쏟지 않는다면 아무 상관이 없을 테지만, '나'와 '글'만 남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채 주변의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글을 써보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잠든 깊은 밤이나 새벽에 홀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등의 노력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희열이라는 것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지극한 기쁨이라고 합니다. 뭔가를 어중간하게 해 놓고 우리는 기쁨을 느끼진 않습니다. 그것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어느 정도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 우린 보람을 느끼게 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희열의 그 크기를 굳이 따진다면,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그 상태를 희열을 느낀다,라고 표현하지 않을까요? 이왕 글을 쓰는 거, 글쓰기에서 희열을 느끼기 위해 지금이라도 인터넷, 스마트폰, TV를 잠시라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치워 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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