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슴의 몸통을 가진 그 짐승은 몸통의 끝부분에 소의 것처럼 생긴 꼬리를 달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발굽도 있고 갈기도 있었다. 아무리 봐도 생김새는 영락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기한 빛깔 때문이었다. 대략 대여섯 가지쯤 되는 빛깔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쏘아 올린 빛처럼 발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두 날개는 독수리를 닮았고, 몸에 덮인 비늘은 어김없는 용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머리에 뿔이 달린 것으로 보면 동화책 속에서나 본 듯한 유니콘을 마주 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뭐야? 이건 상상 속의 동물들이 마구 섞인 거잖아?’
마치 성희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새는 머리 위에서 맴돌기만 했다. 몇 번은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또다시 몇 번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날아다녔다. 그러다 가끔은 하늘 위로 높이 솟구쳤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쯤엔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자신의 생김새를 실컷 봐 두라는 듯 날개를 활짝 펼치며…….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누구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질하거나 기겁하고 도망가는 따위의 일은 없었다. 길을 지나던 몇몇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은 채 가던 길만 재촉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성희를 보며 뭔가가 있나 싶어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럼, 저게 내 눈에만 보인단 말이야?’
순식간에 눈앞에서 새가 사라졌다. 그렇게 빨리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궁금했다.
괴상한 그 새가 어디로 갔을까,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이에 언제 왔는지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금 전 집 앞에서 서성거렸던, 골목길 입구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내가 사람을 찾긴 제대로 찾은 것 같구려. 그동안 잘 지냈소?”
동화나 옛날이야기에 나올 법한 산신령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목소리에 참 잘 어울리는 표정과 옷차림을 한 웬 노인이 성희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그런 미소였다. 그러고 보니 가까이에서 봐도 족히 2m는 넘어 보일 정도로 키도 컸다. 누군지도 모르는 노인을 보며 성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그런데 영감님은 누구세요?”
휘둥그레진 성희의 눈을 보며 노인은 잔잔하게 미소만 지었다. 마치 성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벌써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없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주 어렸을 때 보고는 못 봤는데, 그동안 참 반듯하게 자랐구려!”
그다지 불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랄까, 포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친숙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생각들이 성희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영감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아세요?”
“음, 언젠가는 처자도 날 알게 될 거외다. 내가 보기에는 그때가 그리 멀지도 않을 것 같구려.”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한 노인은 궁금증만 잔뜩 남겨둔 채 어느새 종종걸음으로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분명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더듬어 봐도 기억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그 파편을 찾아낼 순 없었다. 조금 전 집 앞에서 본 것 말고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꽤 오래전에 말이다. 왜 하필 그때 족히 이십여 년은 지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온통 보라색으로 하늘이 물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긴 그림자들이 담벼락을 기어오를 때가 될 것이다.
‘아! 엄마가 많이 기다릴 텐데…….’
성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허둥지둥 발길을 돌렸다. 왠지 아까 그 노인이 뒤에서 쳐다볼 것만 같았다. 또 혹시라도 그 새가 힘찬 날갯짓으로 등 뒤에서 다가오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다시 하늘이 어두워졌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성희는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성희의 발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다행스럽게도 더는 누군가가 쫓아오는 느낌이 없었고, 전처럼 느닷없이 머리 위의 하늘이 깜깜해지는 일도 없었다.
한적한 골목길을 지나 반쯤 열린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대문을 살짝 밀어 닫아놓고 대청마루에 올라서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찌개 냄새가 잠시나마 그 기억을 잊게 해 주었다.
“갔다 왔니? 밥 먹게 어서 손 씻어.”
평소 같았으면 엄마를 거들어 주었을 터였다. 더러는 직접 나서서 식사 준비를 하곤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성희는 엄마와 마주 앉았다. 음식이라고는 못 하는 게 없는 엄마 덕분에, 조금 전 이해할 수 없는 그 광경에 한참 정신을 빼앗겨 있었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숟가락을 들다 말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기억에 성희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망설여야 했다.
“엄마! 조금 전에 밖에 나갔다가 이상한 영감님을 봤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어디선가 본 기억은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질 않아요. 어찌 보면 처음 본 사람 같기도 하고 말이에요.”
국을 한 숟가락 뜨던 엄마가 잠시 멈추고는 성희를 보며 물었다.
“이상한 영감님이라니?”
“아까 어떤 영감님이 줄곧 집 앞에서 서성거렸었어요. 나하고 눈이 마주치니까 사라졌었는데, 아빠한테 지갑을 갖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또 만났어요.”
그렇지 않아도 연쇄살인이나 성폭력 사건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탓에, 늘 딸 하나만을 키워오던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성희를 쳐다보았다. 이십여 년 전 성희보다 다섯 살이 더 많은 성윤이 아무런 기별도 없이 집을 나간 뒤부터는 그런 걱정이 더 심해진 형편이었다.
“집 앞에서 서성거리기까지 했다고? 혹시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던?”
“아뇨. 무척 인자하게 생긴 분이었어요. 세상에서 그렇게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엄마는 수저를 밥상에 내려놓고는 성희를 보며 엄마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면서 어릴 때 봤었는데 그새 참 반듯하게 자랐다고 했어요.”
“누구지? 얘기를 들어보니 널 분명히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은데?”
"그런데 말이에요. 저도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을 분명 본 것 같긴 한데, 두 살 때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뭐라고? 두 살 때의 일이 기억이 나?"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말이에요. 그때 일이 기억날 리가 없잖아요."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데가 없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누군지 아세요, 엄마?”
“아니? 누군지 잘…….”
뭔가를 말하려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 그리고 분명히 뭔가를 보긴 봤는데 그게 좀 봤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아주 먼 기억 속의 일을 더듬는 듯 한참 동안 딴 곳을 쳐다보던 엄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마도 뭔가 짐작되는 일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너무 괴상하게 생긴 아주 큰 새였어요. 하늘을 날아다녔으니 분명 새였을 거예요. 아무튼 그렇게 크고 신기하게 생긴 새는 처음 봤어요.”
다시 수저를 들던 엄마가 뭔가에 놀란 듯 수저를 떨어뜨렸다. 확실히 엄마는 뭔가를 숨기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