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Dec 17. 2024

지하철 풍경

326일 차.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면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십 명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멍한 상태로 다들 어딘가로 바삐 가고 있습니다. 막 자다가 일어난 듯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중의 몇 명은 장소만 바뀌었지 연달아 잠을 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자기 목적지에서 제대로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그건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자거나 조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는 즉시 자곤 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서서 졸기까지 했으니까요. 다소 자리는 불편하나 자기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대신 운전해서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니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만큼 괜찮은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누군가는 노래를 듣고 용기가 있는 건지 무례한 것인지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전자책을 읽고 있고, 몇몇은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거북목 증후군이 어쩌니저쩌니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박은 채 그러고 있습니다.


이젠 좌석에 기대어 자지 않아도 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거나 졸았던 건 할 일이 딱히 없으니 그랬다는 결론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할 아침부터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맞이하는 게 그리 바람직한 일일 수는 없습니다. 날이 밝았다면 바삐 돌아다녀야 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이니까요.


그래도 사실 예전엔 드문드문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줄 읽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젠 제가 딱 그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단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 오르면 휴대폰부터 꺼내 들게 됩니다.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니 저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게임을 하고 노래를 듣고 동영상을 보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묻지도 않는 질문에 저는 답변을 생각해 놓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슬슬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엉뚱한 걸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쓴다고 말입니다. 이 정도면 내로남불이 따로 없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학교로 가는 중입니다. 특히 어제는 집에 일이 있어 늦게 잠이 드는 바람에 4시간밖에 못 잔 상황입니다. 지하철 좌석에 기대어 한 20분이라도 잠을 청할 수 있지만, 어떻게든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으려고 버티는 중입니다. 저 역시 그러기엔 유튜브를 보는 것만큼 더 좋은 일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게는 다행히 할 일이 있습니다.


역시 깨어 있으니 뭐라도 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또 한 편의 글을 썼습니다. 아침의 시작을 글쓰기로 열었습니다. 당당하고 기운차게 하루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저는 작가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