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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9. 2023

글 쓰는 시간, 글 쓰는 장소

여덟 번째 글: 오늘 낮 동안 이상하게 글 쓰기가 싫더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오늘 낮 시간 동안 글을 전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여건도 갖추어져 늘 그랬듯 키보드로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스마트폰을 꺼내어 글자를 처넣기만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더군요. 그래서 이것도 휴식이랍시고 그냥 제 머리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쉼'을 주었습니다.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제가 좋아서 글을 몰아서 쓴 것뿐인데, 아주 짧은 타이밍의 번아웃이 왔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7월 하순 들어 지금까지 곰곰이 돌아보니, 글을 많이 쓴 날은 A4 11장 가까이 글을 썼더군요. 가장 적게 쓴 날에도 A4 7장 정도는 썼고요. 그런데 정말이지 우스운 건, 그냥 제가 좋아서 쓴 것뿐이지 그 누구도 저에게 글을 쓰라고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은 결국 글을 쓰다 설령 코피를 쏟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에게든 앓는 소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살다 보면 그렇게 뭔가에 미쳐 푹 빠져서 시간을 보낼 때도 더러는 있어야 그것 역시 사는 재미일 거라고, 그러면서 그 속에서 또 하나의 '나다움'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경험상 만반의 준비가 갖춰지길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만반의 준비라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일까요, 종종 글쓰기라는 것이 어쩌면 완전무결한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만 가능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면서 수행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빈틈없는 계획과 준비가 있으면 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게 이치입니다. 그런데 글쓰기의 경우엔 그렇지 못할 때 더 잘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바쁜 하루의 일과를 끝낸 깊은 밤, 이제는 비로소 글쓰기만 남았다 생각하고 따뜻한 한 잔의 커피와 함께 비로소 책상에 앉았을 때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워드프로세서가 준비되어 있어 타이핑만 하면 되고, 더러는 빈 사백자 원고지를 펼쳐놓아 언제든 펜으로 적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건 글 쓰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양질의 글을 완성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쓰는 장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책상 앞에 앉거나 하다못해 서재에라도 틀어박혀 모든 소음을 멀리한 채 몰두하면 글이 잘 풀릴 것 같지만, 너무 조용하면 더 집중이 안 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적절한 배경 음악이 있거나, 너무 많은 사람만 아니라면 몇몇이 두런거리는 소리도 오히려 글에 집중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 같고, 지금처럼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와 바퀴 밑에 물을 깔아뭉개면서 마구 내달리는 차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쓸 때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편안한 장소보다도 오히려 흔들리는 버스 안이나 지하철, 그리고 기차 안에서 집중이 더 잘 되는 경험을 합니다. 물론 그 안에서 훨씬 많은 양의 글을 쓰기도 하고요. 심지어 하차 안내방송이 나오고 나서 하차하기까지의 3분 남짓한 시간에 뭔가에 씐 듯 글을 쓸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지금부터 글을 써 볼까'라는 식으로 글쓰기를 수행하진 않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언제가 가장 적당한지 혹은 글을 쓰기 위해 안성맞춤인 여건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초반에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단련한 탓도 있겠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을 포착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기에 앞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먼저 앞서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곤 합니다.


하체 운동의 꽃은 스쿼트라고 합니다. 맨몸으로 하든 중량을 얹어 하든 처음 스쿼트를 할 때면 너무 자세에 얽매이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양발은 11자 형태가 아니라 45도 정도 벌리라거나, 앉았을 때 무릎이 발가락끝선을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거나, 무릎이 정면을 향하면 안 되고 발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는 등의 올바른 자세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운동 꽤나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자세로 스쿼트를 수행하다 보면 부상이 올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운동 블로거가 정말이지 제가 딱 듣고 싶어 했던 말을 하더군요. 닥스! 일단 닥치고 스쿼트나 하라는 것입니다. 10개도 못 하는 주제에 자세가 어떠니 저떠니를 따지지 말고 일단 일정한 횟수를 할 때까지는 무조건 입 닥치고 해 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올바른 자세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스쿼트를 못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닥치고 하다 보면 몸이 그 움직임의 원리를 기억하게 되고, 그 기억의 길을 따라 제대로 된 스쿼트를 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저는 글쓰기도 어쩌면 이 스쿼트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물리적인 환경과 만반의 준비를 따지기에 앞서 어떤 시간대에든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습관들이 이어져 몸이 글쓰기라는 행위를 기억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기억의 길을 따라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기억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닥치고 글 쓰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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