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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08. 2023

첫 문장 쓰기

일곱 번째 글: 첫 문장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많은 글쓰기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마도 첫 문장 쓰기일 것입니다. 혹은 조금 더 넓게 생각했을 때, 첫 문장을 포함한 첫 문단 쓰기가 아닐까 합니다. 첫 문장이라는 것은 작품이 시작하는 맨 처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독자가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장을 말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특징과 외양과 이름 등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들은 우리가 그다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건 그의 첫인상이 우리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첫인상이라면 작품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첫인상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물론 작품에서의 첫인상은 바로 첫 문장 혹은 첫 문단에 대한 우리의 기억 혹은 느낌 전반을 말할 것입니다.


오늘날 독자의 집중 시간은 짧다. 요즘 독자는 처음 몇 장을 참을성 있게 읽으며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독자에게 책을 사도록, 편집자에게 원고를 출간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처음 한두 페이지 안에 승부를 보아야만 한다. ☞ 샌드라 거스, 『첫 문장의 힘』, 11쪽


위에서 인용한 대목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학 작품을 대할 때 그 책의 두께와는 관계없이 읽자마자 도무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어떤 작품들은 대충 10장 내외만 읽어 보면 더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게 하는 책들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를 지속적으로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어쩌면 첫 문장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 그러면 전 세계의 유명한 소설가들은 자신의 작품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하고 있을까요? 그 실례를 통해 첫 문장이 주는 느낌을 한 번 느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프란츠 카프카,『변신』: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엄청나게 큰 갑충으로 변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데미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J.R.R. 톨킨,『호빗』: 땅 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알베르 카뮈,『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피레우스에서였다.

다자이 오사무,『인간실격』: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지 오웰,『1984』: 4월의 맑고 쌀쌀한 어느 날, 시계는 1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돛단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그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J.R.R. 톨킨,『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골목쟁이집의 골목쟁이네 빌보 씨가 머지않아 111번째 생일날 특별히 성대한 잔치를 열겠다고 선언하자 호빗골은 무척 떠들썩해졌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 년의 고독』: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전 어느 오후 아버지에게 이끌려 얼음 구경을 하러 간 일을 떠올렸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눈먼 자들의 도시』: 노란 불이 들어왔다. 차 두 대가 빨간 불에 걸리지 않으려고 가속으로내달았다.

현진건,『운수 좋은 날』: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김승옥,『무진기행』: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박경리,『토지』: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위의 작품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짐작하겠지만, 첫 문장은 작품 전체를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작 문장 하나, 혹은 문단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 파급효과는 그 문장 하나, 혹은 그 문단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첫 문장(첫 문단)은 작품의 주제를 내포하기도 하고,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들을 예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중요한 등장인물을 불러들임으로써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끔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첫 문장이 주는 의미가 그만큼 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첫 문장이 순탄하게 시작되면 반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겠습니다.


이런 첫 문장 쓰기를 두고, 글을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오죽하면, '첫 문장'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행본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참고 삼아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첫 문장'이라는 낱말을 넣어 검색했더니 전자도서까지 포함하여 무려 56종이나 출력이 되더군요. 그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어느 문장을 쓸 때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독자가 그다음 이야기(문장, 문단)를 읽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정도의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첫 문장을 가장 마지막에 쓰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실제로 가장 마지막에 쓰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첫 문장은 가장 먼저 써야 하는 것입니다만, 일단 그렇게 시작해 놓고 그다음 문장, 그 다음다음 문장 등으로 이어가며 글을 써서 완성한 뒤에 다시 돌아와 첫 문장만큼은 멋지게 다듬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첫 문장을 쓰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아무나 되는 건 아니라고 말입니다.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적어도 작가라는 반열에 오를 정도가 안 되면 그것 역시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타당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니 어쩌면 저는 늘 첫 문장을 써야 합니다. 그게 문학적인 바탕이 깔리지 않는 방법일지라도 저만의 방법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굳이 저만의 방법을 밝히자면 솔직히 전 '첫 문장 쓰기'에 그다지 크게 목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에게 중요한 것은 첫 문장을 완벽히 다듬어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 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제가 생각한 것을 저의 언어로 표현하여 완결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행위가, 그리고 그런 행위가 습관이 되어 언제든 어디에서든 제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 힘이 더 시급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제 소견으로는 이 선결과제가 해결된 후에 '첫 문장 쓰기'에 공을 들이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을 사랑하시고 글을 쓰시는 여러 작가님들께서는 어떻게 첫 문장을 쓰시는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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