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그런 걸 믿고 마음이 동요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절을 창건할 당시 신비를 간직한 채 지금껏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허무맹랑한 낭설을 믿는 것도 문제일 테다. 그러나 이 작은 연못에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주지는 왼손에 든 염주를 손 안에서 굴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진 임금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늘이 노한다고 했던가? 유서 깊기로 이름난 이 사찰에서 하필이면 이런 때에 흉흉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주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부덕함 탓인가 싶다가도 그럴 리가 없다고 주지는 단언했다. 스스로에 대해 자만심을 가질 정도로 불심이 얕지는 않았지만, 그는 분명 누가 봐도 모든 것에 초연한 사람이었다. 절터를 지켜온 것이나 다름없는 신비스러운 그 연못물이 말라가는 것도 모자라 온통 흑색으로 변해간다는 건, 적어도 자신이 이 사찰에서 주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하늘의 경고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거 참난감하네. 원인을 알아야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어쩌면 표면뿐만 아니라 물속까지 검은색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가장 우려스러운 건 저러다 조만간 물이 썩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설마 설화 속의 그 용이 실제로 연못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쨌거나 지금의 이 현상은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경건하고 평온해야 할 이곳이 일대 광풍에 휩싸일 수도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주지는 온갖 떠오르는 잡념들을 떨치려 법당에 홀로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의 몇 구절을 읊어보았다. 청아하게 울리는 목탁 소리는 확실히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 중 그저 습관처럼 그렇게 두들겨 댄 게 아닌가 생각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정좌한 채 두드려 대는 그 소리가 조금씩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맑고 청아한 소리가 텅 빈 법당 안에 울려 퍼질 때마다 가슴속이 시큰거리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왜 이다지도 감상적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주지는 누군가에게서 죽비로 어깻죽지를 얻어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정신을 차릴 정도로 말이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꼭 뭔가에 쫓기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느닷없이 주지는, 자신을 둘러싼 채 일어나고 있는 심적 갈등의 그 단초를 잡아내려 애를 써 보았다. 생각할수록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학교 안엔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오래된 창고가 하나 있다. 그것도 쉽게 발길이 가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창고는 교실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가장 외진 곳에 있었다. 바로 그 외진 곳 너머에 조금 전 발길을 옮겼었던, 사람조차 살지 않은 듯 보였던 마을이 있었다.
평소에 그 창고는 누구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 곳이었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곳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다. 문둥이가 살고 있어서 보름달이 뜨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난 마을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창고 안에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얘기까지 있어서 더더욱 그러했다. 심지어는 그 황당한 얘기가 하나의 전설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에 신경이 조금 쓰이긴 했다. 그래도 어쩐 일인지 성희는 반 아이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거닐어 보고 싶었다.
사실 굴삭기로 단숨에 밀어버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긴 했다.노는 아이 하나 없는 빈 운동장에 바람 빠진 축구공 하나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마냥,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중요한 건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 내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겁에 질릴 만했다.
그러고 보니 성희는 요 며칠 사이 부쩍 담력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시키기라도 한 듯, 발걸음이 저절로 창고 쪽으로 옮겨졌다. 정작 문제의 그 창고 앞에 서봐도 별다른 건 없었다. 이 환한 대낮에 귀신이 있을 턱도 없고, 그렇다고 보름달이 뜬 밤도 아니니 설령 있다 한들 문둥이가 담을 넘어 올 리도 없었다.
‘그래, 그냥 헛소문일 거야!’
웬만한 학교마다 하나씩은 있을 법한 그저 그런 괴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부풀 대로 부풀려져 그렇게 된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수십 년 전 이 학교가 처음 생길 때 공동묘지 터를 메우고 학교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생겨난 건지도 모른다는 제법 설득력 있는 의견이 들려오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걸레를 빨아왔더니 청소당번인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없었다. 청소는 한 건지 온 구석에 먼지가 쌓여 반쯤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폴폴 날리고 있었고, 제대로 치워놓지도 않고 되는 대로 막 던져 놓은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발에 이리저리 차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착용한 성희는 혼자서라도 다시 청소를 해야 했다. 교실 정리가 끝나니 반 정도 비어 있던 종량제 봉투가 꽉 차 버렸다.
‘이걸 어쩌지? 버리러 가야 하나?’
평소처럼 덩치가 큰 남학생이라도 있으면 시키면 되지만, 아무도 없으니 할 수 없이 직접 쓰레기를 내다 버리러 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반드시 그 창고를 지나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이나 비가 드문드문 내리는 날엔 어김없이, 그곳을 지날 때면 무리를 지어 달아나곤 했던, 그러다 한 아이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먼저 달아나고 나머지는 그 아이를 뒤쫓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던 그곳을 말이다. 물론 창고를 지나지 않고 가는 방법도 있었다. 아예 반대 방향으로 가서 건물을 끼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족히 두어 배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맹점이 있었다.
성희는 무서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무서움이라는 것의 속성상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금 전 미술 시간엔 어쩌면 운동장에 반 아이들이 있었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다른 날보다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부니 더더욱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성희는 50L짜리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각각 하나씩 들고 낑낑대며 혼자서 털레털레 창고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어디선가 요란한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학교 안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벙어리 박 씨가 한창 잔디를 깎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