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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17. 2024

누군가의 꿈

#10.

당나라에서 수학 중이던 자장율사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자장의 기도를 조용히 지켜보던 문수보살은 승려로 변신하여 자장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백여 개와, 부처님의 정수리 뼈, 염주, 경전 등을 자장에게 주면서 문수보살이 말했다.

“이 가사는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것이고, 또 이 사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부처님의 머리이니라. 그대는 말세에 계율을 지키는 승려가 될 테니,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아무리 평범한 승려로 변신했다 한들 자장이 그를 몰라볼 리 없었다.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넙죽 엎드려 그저 경외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자장을 보며 문수보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대의 나라 남쪽 영축산 기슭에 사악한 용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그 용들이 나쁜 마음을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노라. 그러니 그대가 그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계단을 쌓아 이 진신사리들과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하게 될지니,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그대의 나라에 오랫동안 불법이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니라.”


얼마 후 자장은 귀국하여 왕과 함께 영축산에 있다는 그 연못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과연 그곳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자장은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과 경을 읽으며 아홉 마리의 용에게 조용히 연못을 떠나 달라고 청하였다. 물론 그들이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자신들이 그 오랜 세월 버티고 온 그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곧 자신들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용들은 자장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낱 승려 따위가 자신들에게 대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껏 누구도 그들에게 대항한 적이 없던 들이었다. 할 수 없이 자장은 법력으로 아홉 마리의 용과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견디지 못한 용들은 제각기 앞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다섯 마리 용은 남서쪽에 있는 영축산 아래의 골짜기에 이르러 떨어져 죽게 되었는데, 그곳을 오룡동이라 부른다. 뒷산 중턱에 있는 검붉은 색의 바위는 이 용들이 흘린 피가 묻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 마리는 삼동곡으로 달아나다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죽었다. 당시 부딪힌 바위에 용의 피가 낭자하게 묻게 되어 후세 사람들이 이 바위를 용혈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은 마지막 한 마리의 용이 자장에게, 목숨만 살려준다면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사찰의 터를 수호할 것을 맹세했다. 이에 자장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그곳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왕은 근처에 있던 어느 동굴벽에 그 모든 과정을 온갖 문자와 그림들로 기록해 후세 사람들이 알게 하라고 했다.

무려 천사백여 년이 흐른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자그마한 상징적인 연못이 있다. 그 연못이 바로 구룡지인데, 크기가 지나칠 정도로 작은 데다 물의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연못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이 구룡지의 수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신비함을 가지고 있다.


주지는 조금 전에도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절의 내력에 대한 얘기를 했다. 가끔 피곤에 겨워 졸다가도 이 얘기만 나오면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듣곤 했었다. 저마다 자신이 다니는 절에 이토록 놀라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법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은 어느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일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지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주지의 입장에서도 오십여 년 전, 속가의 부모의 손을 잡고 이 사찰에 왔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전설이기도 했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그만큼 이곳이 유서 깊고 신비한 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였다.

영험하다고 믿어지는 것일수록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둘러싸기 마련이었고, 그런 이야기들이 모종의 자부심을 형성하게 될 터였다. 물론 신도들의 신앙심을 다지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는 법이었다.


주지는 법회를 마치자마자 신발을 신고 뜰로 내려섰다. 어쩐 일인지 처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다. 그냥 잠시라도 좋으니 좀 거닐어 보고 싶었다. 주지는 용들을 물리치고 못을 메워 절을 창건했다는 구룡지 주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수량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던 연못이었다.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연못이라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연히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라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주지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씩 수량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봐도 그게 그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차피 그다지 깊지도 않은 못이라 물이 줄어드는 게 확연히 눈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감각이 무딘 사람은 전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물 색깔이 눈에 띄게 검게 변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과장하자면 맑은 물에 먹을 풀어놓은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주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본 현상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 물은 언제 봐도 색깔이 여전하네. 역시 유서 깊은 절은 뭐가 달라도 달라!”

일전에 신심이 깊어 보이는 한 보살이 작은 타원형의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이 물이 무슨 색깔로 보이느냐고…….

그래서일까? 아직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했던 마음이 기정사실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눈에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다시 말해서 주지의 눈에만 물이 검게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는 뜻이리라.

[ 각주 ]
자장율사: 신라시대의 승려로, 속명은 김선종, 법명은 자장(590~658)이다. 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하는 법도를 확립했으며, 불도에 입문하는 자를 위해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쌓았다. 그는 불교를 통한 국민 교화에 힘썼으며 불교 교단의 기강을 바로 하기 위해서 시험과 계를 통해 승려들을 관장하였다.

문수보살: 불교의 대승보살 가운데 한 분으로 석가모니 사후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어 왔는데, 사찰 대웅전에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문수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 만을 모신 문수전을 따로 두기도 한다.
 
진신사리: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겨나는 구슬모양의 유골을 말하는데,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사리신앙이 더욱 신비화되어 있다.
 
석가여래: 석가모니를 신성하게 일컫는 말
 
영축산: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원동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상북면에 걸쳐 있는, 높이 1,081m의 산으로, 이 산의 남쪽 산록에 있는 가지산 도립공원 내에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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