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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15. 2024

누군가의 꿈

#9.

그러고 보니 태어나 지금까지 여기서 살았지만, 한 번도 이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단지 이상한 소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성희도 알지 못했다.

“저 안에 가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그 마을엔 문둥병자들이 살고 있단다. 그 사람들은 보름달이 뜨면 아이를 잡아먹는대.”

어릴 때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꼭 동네 어른들이 아니더라도 무슨 전설의 소재로 충분히 우려먹을 법한 그런 이야기였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그곳에 선뜻 가 볼 수 없었다. 그건 어린 시절 성희와 함께 자랐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 등골이 오싹했더라는 소문 탓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굳이 발길을 꺼릴 이유는 없었다. 고작 그런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몸이 움츠러들 나이는 아니었다. 어느새 성희는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참 아담한 마을이야!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마치 잘 정돈된 시골에 온 것 같았다. 소란스러운 광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서 방음이 잘 되는 두툼한 헤드폰을 낀 것 같은 느낌이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주변의 소음이 모두 차단된 듯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마을이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펼쳐진 황톳길을 사이에 두고 몇 미터 정도의 간격을 따라 집들이 마주 보고 늘어서 있었다. 얼핏 둘러봐도 족히 서른 채는 되어 보였다. 몇몇은 잘 정돈된 기와집이었고, 절반쯤은 마치 거짓말처럼 아직도 완벽히 보존된 초가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한창 아침 먹을 시간이라 그런지 고풍스럽게 생긴 몇몇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상해! 어째서 마을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거지?’

눈을 씻고 봐도 사람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었다. 출근하고 등교하느라 한창 바쁠 아침 시간에 말이다. 무섭진 않았으나 이상한 기분이 들기엔 충분한 곳이었다. 길 좌우로 족히 서른 채 가 넘는 집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성희는 문득 이곳이 텅 빈 마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렇게도 평온해 보이는 마을 속에 극도의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마을은 위치로 보면 딱 학교 뒷담 쪽이었다. 몇십 미터 이어진 학교 뒷담을 따라 오솔길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학교 쪽에선 그 오솔길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겠다. 아니 성희는 단 한 번도 학교 안에선 이 오솔길을 본 기억이 없다. 담장이 높은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담장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마치 어제까지는 없다가 갑자기 오늘 아침에 생겨나기라도 한 듯 생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길이었다.

보통은 담을 넘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들이 넘을 수 있는 담 중에선 가장 낮은 담에 속하지만, 그 어떤 아이들도 이 마을을 끼고 있는 담 쪽으론 발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문둥이와 관련된 소문이 한몫했을 터였다. 마찬가지 이유로 어쩌면 창고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작용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뜬금없이 귀신은 무슨…….’

성희는 발걸음을 재촉해 오솔길을  빠져나왔다. 물론 돌아 나오는 동안에도 사람의 옷깃 하나 볼 수 없었다.




교사가 된 지 2년째로 접어든 성희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따분한 하루라고 치부하며 소일할 만큼 평범한 나날들만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하루하루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이 벌어졌다.

어릴 때부터 꿈이 교사였던 성희에게 이곳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집에서도 멀지 않아 다니는 데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가끔은 집에서 멀리 벗어나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일말의 불만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아이들은 미술 준비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두 시간 연달아 있는 미술시간은 아이들에겐 조금은 편하게 수업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건 성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금방 밥을 먹고 나른해지기 쉬운 때라 오히려 잘된 일이려니 싶었다.

“자, 오늘은 학교 풍경을 그리는 시간입니다. 나무나 꽃을 배경으로 해도 좋고, 학교 안에 있는 여러 건물을 그려도 좋겠습니다. 구도를 잘 잡아서 가능한 한 표현하려는 대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리길 바랍니다.

성희는 아이들에게 6교시 종료 시각이 15분 남을 때까지는 교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은 성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림 도구들을 들고 교실 문을 나섰다. 곳곳에 있는 나무와 운동 기구 등을 그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향했다. 학교 건물을 그릴 아이들은 건물이 최대한 넓고 선명하게 보이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들이 밖에서 활동할 때는 교사는 무조건 밖에 있어야 한다. 그것도 이번처럼 아이들이 흩어져 있는 경우엔 성희도 한 곳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성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는 본관 정문 쪽을 피해 후문 쪽으로 나갔다. 그나마 후문을 나서는 아이들은 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성희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과감하게 왼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른쪽으로 가면 본관 건물을 끼고돌아 다시 운동장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이지만, 왼쪽으로 가면 사실상 막다른 곳을 만난다. 물론 아이들은 그 막다른 곳이 탐탁지 않아 약속이라도 한 듯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오른쪽으로 가던 아이들이 일제히 이상한 눈빛으로 성희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그쪽은…….”

성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눈빛의 의미를 모를 리는 없었다. 하필이면 그곳이 누구든 가기 두려워하던 바로 창고 쪽이었다. 귀신이 나온다고 소문이 난 바로 그 창고 말이다. 어차피 막다른 곳이니 되돌아 나와야 한다. 다만 별생각 없이 그쪽으로 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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