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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22. 2024

글쓰기가 업인 사람도 글쓰기가 두렵다.

2024.12.22.

글을 써서 밥벌이 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게 두렵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것은 글이 좋아 글을 쓰게 된 운명을 배반하는 걸까. 생각은 점점 복잡해진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테지만  물론 내 경우, 무슨 글이든지 써야 할 때에 일단 쓰기 싫은 생각이 먼저 들고 만다.    ☞ 백가흠,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 60쪽


꽤 오랜만에 현직 소설가가 쓴 수필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수필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리 편안하게 읽히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나, 직업적인 고민이나 사색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서 종종 들춰보곤 합니다. 더군다나 이들 모두가 소설가들이니 소설을 쓰려는 제 입장에선 그들의 말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백가흠이라는 이 소설가는 그래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소설가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팬층도 있고요. 화려한 메이저급의 소설가는 아니라고 해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글을 써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활동은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시대를 뒤흔들 만한 작가라는 게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노벨문학상 또한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니 글을 쓴다는 측면에서 그나마 생계를 유지할 만한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더군요. 언제쯤이면 백지를 앞에 두고 앉아서도 두려움이 없어질까, 하는 생각이 글을 쓸 때마다 든다고 말입니다. 묘하게도 그는 글쓰기가 두렵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 버립니다. 솔직히 이 말은 그 자체로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글쓰기를 두려워한다니요? 그는 막상 글을 쓰려할 때는 우선 쓰기 싫은 생각부터 든다는 말까지 합니다. 물론 이건 이 소설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소설가들이 쓴 수필집을 숱하게 읽어본 결과, 그 어떤 소설가도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니까요.


어찌 보면 이건 참 묘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래는 잘하지만 아직 가수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가수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정작 가수가 된 사람은 어떻게 하면 노래를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격입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얘기하자면, 글은 잘 쓰지만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작가가 되는 방법과 그 길에 대해 고민하고, 이미 작가가 된 사람은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를 고심한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이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며칠 전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별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그가 던진 모종의 질문이 저를 꽤 깊은 고민의 시간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평소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습관처럼 글을 써왔던 제 자신을 한 번 더 돌이켜 볼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여기에 한 번 옮겨볼까 합니다.


별다른 생각이나 목적도 없이 누군가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그 사람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할 말은 반드시 하고 마는 성격이기에 대화를 나눌 때마다 본의 아니게 긴장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글쓰기에 이르렀습니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데다 그렇다고 해서 출간 작가도 아니니 어지간해선 먼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저였으니 그냥 그렇게 넘어갈 줄 알았습니다. 그때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참, 요즘도 글 쓰세요?"

"네. 가끔 씁니다."

굳이 하루에 몇 편 쓴다는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른 대화를 끝내고 싶었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글쓰기가 두렵지 않으세요?"

아마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기 때문일까요? 실제로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거의 없긴 합니다만,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한 나머지 저는 약간 과장을 섞어서 대답했습니다.

"네. 저는 글을 쓰는 게 전혀 두렵지 않더군요. 글 쓰는 게 즐겁습니다."

실제로 저는 글을 쓰는 게 즐겁습니다. 뭐,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갑자기 질문을 던진 그 사람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라며 미리 제게 양해를 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아마 **씨가 글쓰기의 본질이 뭔지 아직 명확히 몰라서 그런지도 몰라요."

"글쓰기의 본질이요? 저는 본질을 아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본질을 안다고 해서 한 줄의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제의 발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니면 **씨가 글쓰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 만한 그런 글을 아직 쓰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 뒤로도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갔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더는 옮기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이 던진 질문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처럼 한참 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글쓰기가 두렵다는 생각이 들 만한 그런 글을 아직 쓰지 못하고 있어서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는 말이 제 가슴을 후벼 파는 기분이었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직 글쓰기를 논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겠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처럼 숱한 글을 써오면서 타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했다면 저는 아마 그 어떤 글도 쓰지 못했을 거라고 말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저는 글쓰기의 본질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지금보다 더 수준이 높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보다는 한 편의 글이라도 더 쓰는 게 낫다는 주의입니다. 그렇게 늘 생각하고 있던 차에 듣게 된 말이었으니 그 잔상이 생각보다도 오래가더군요. 사람의 말은 분명 그렇게 들렸습니다. 아직 제가 글쓰기를 두려워할 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글쓰기를 두려워할 날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읽고 있는 수필집에서 백가흠 소설가는 글쓰기가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소설을 있고, 결과 밥벌이를 하고 있다고 믿는데도 말입니다. 비록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기성 소설가가 글쓰기가 두렵다고 해서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제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 역시 작가냐 아니냐를 떠나 충분히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충분히 생각이 갈리기 마련이라고 믿을 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 역시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이 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글쓰기가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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