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 예순 번째 글: 음악이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라라크루에서 오늘 제시된 질문이 '네 영혼의 음악은 무엇이냐'였습니다. 모처럼 만에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많은 음악들 중에서 제 영혼을 사로잡는 음악을 고르는 게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곡만 해도 최소 수백 곡에서 많게는 수천 곡에 이르는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딱 하나를 고른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일까요?
확실한 건 가장 먼저 제 머릿속에 떠오른 곡이라고 해서 그 곡이 반드시 제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긴 합니다. 어쨌건 간에 이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음악이라는 매개체에 마음을 의지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음악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전에 수요질문의 글을 올리면서 벌써 몇 번이고 제가 선택한 바로 그 곡을 듣고 또 들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음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내친김에 음악에 대해 조금은 더 생각해 볼까 합니다. 과연 음악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우리 삶 속에 스며들었는지, 그것이 처음 이 지구상에 나타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대세적인 견해가 있을 테지만, 사실이 어떻건 간에 그건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저 제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고, 또 그런 수단으로써의 음악을 즐기기만 하면 될 일입니다.
다만 분명 음악은 원시집단무가의 형태로서 처음 나타났을 것이라는 겁니다. 쉽게 생각해서 그때는 악보는커녕 종이도 없던 시절이었고, 어쩌면 그 흔한 언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시절이었을 테니까요. 굳이 지금 그걸 명명하자면 멜로디라고 할 만한 그 어떤 것을 누군가가 읊조렸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러봅니다. 아마도 그렇다면 쉽게 따라 부를 만한 것이었을 테고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만큼 소득이 없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음악이 먼저였는지 춤이 먼저였는지 하는 것도 제겐 관심사가 아닙니다. 멜로디를 옮겨 적을 기호나 종이조차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단순한 소리(가령 '우'나 '아' 등)들로 도배된 멜로디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을 테고, 그런 단순한 멜로디들이 종이가 나오고 멜로디를 나타낼 수 있는 음악적인 기호가 고안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 종이 위에 옮겨졌을 것입니다.
정교한 멜로디의 분화가 없는 단순히 리듬만으로 이루어진 사물놀이나 타악기 몇 가지 등으로 이루어진 난타 음악 등에 우리가 쉽게 매료되고 열광하는 것도 어쩌면 태곳적 흥의 DNA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런 걸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사물놀이나 난타 음악 등에 더 쉽게 빠져들기는 해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보다 더 복잡하게 분화된 멜로디인 대중가요를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접하며 살아갑니다. 하다못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나 이보다 향유층이 더 적은 국악 음악 등을 즐기곤 합니다.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리듬에만 의존한 게 아닌 정교한 멜로디가 우리에게 인식이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음악을 통해 수많은 정서적인 경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 말입니다. 생활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웃고 울고, 뭔가를 다시 시작해 볼 용기를 갖게 되는 게 다 이런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딜 가나 음악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이에는 우리의 주머니에 들어 있거나 손에 쥔 휴대폰 속에도 언제든지 꺼내어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존재합니다. 음악을 떼어놓고는 삶을 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음악을 향유하면 할수록 너무 감각에만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해서 음악이라는 것이 어떤 효용을 갖는지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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