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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27. 2024

카운트다운

사백 예순한 번째 글: 파이보, 포, 쓰리, 투, 원

아주 오래전 TV에서 우주선이 발사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NASA, 미항공우주국의 분주한 모습이 화면에 비칩니다. 세로로 우뚝 선 육중한 우주선을 지탱하고 있던 지지대가 벗겨져 나가고 버튼만 누르면 발사되기 직전의 상태가 됩니다. 수많은 이목들이 쏠리는 가운데 시간을 거꾸로 세기 시작합니다. 일명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겁니다. 대체로 한 20초 전부터인지 10초 전이었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제로'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던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가장 필요한 핵심적인 부분들만 남겨 둔 잔여물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갑니다. 그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막상 우주선이 지구 밖으로 날아가고 나면 저렇게 이탈된 것들을 어떻게 수거해 갈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만약 땅 위에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싶은 염려도 들었고요.


매일 아침마다 오늘의 날짜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날짜와 요일을 속으로 되뇌고 나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곤 합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이것밖에 흐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언제 이만큼 시간이 지났나 하며 놀라곤 합니다.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시간은 어김없이 가니까요.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슬슬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제법 폼 나게 제대로 세어보고 싶었는데, 오늘 아침에야 화들짝 놀라고 맙니다. 텐, 나인, 에잇 등을 외칠 타이밍을 놓쳐 버렸습니다. 바로 파이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시간이라는 것이 사람의 사정이나 뜻과는 관계없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한다고 해서 더 빨리 흘러가게 할 수도 없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때라고 해도 단 한순간도 붙들어 둘 수도 없는 게 시간입니다. 게다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서 버리면 카운팅이 끝날 때까지는 뭘 어떻게 손 써볼 여력도 없습니다.


그 길고 길었던 365일 중에 고작 닷새만 남겨 둔 상황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힌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늘 이맘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되풀이하곤 했던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비집고 나오려 합니다. 과연 저는 2024년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던 걸까요? 혹시 여러분들은 무엇을 했는지요?


늘 그러했듯 시작은 거창했으나 끝은 초라하기 그지없던 한 해였습니다. 적지 않은 계획과 다짐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것들을 세웠던 그때에도 수많은 변수들과 예상되는 결과를 계산했었으나, 이렇게 전개될 줄은 몰랐습니다. 잘한 일 혹은 좋았던 점은 기억에 없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웠던 일들만 떠오를 뿐입니다. 언제쯤이면 저도 '그래, 이 정도면 잘 살았다'라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될까요?


늦게라도 이제 카운트다운에 돌입합니다.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이미 버튼에 손은 올라가 있는 상태입니다. 대기권을 벗어나 무사히 지구밖으로 유영하는 순간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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