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다섯 쌍 정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TV에서 봤다. 아무래도 시청률을 의식한 탓인지 남자는 대체로 키가 컸고 허우대도 멀쩡했다. 물론 시각적인 효과를 따진다면 여자 출연자의 외모는 그 효과가 극에 달할 정도였다. 미적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본 게 평균치의 관점이라 말하긴 어렵겠지만, 다섯 명의 여자 출연자 모두 상당한 미모에 해당했다.
'못 생긴 사람들은 발 붙일 데가 없군.'
혼잣말을 되뇌며 웃고 말았지만, 정작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건 전혀 엉뚱한 데에 있었다.
아마도 무슨 특집으로 편성된 회차인 모양이었다. 열 명의 출연자 모두 해외에서 거주 중인 돌싱(이혼남, 이혼녀)들이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들이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모두가 그런 것인지 확인은 못했는데, 그중 몇몇은 아예 외국 현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이혼한 지 13년이나 된 사람부터 심지어 3개월밖에 안 된 출연자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해도 13년이나 되었으면 다른 반려자를 찾는 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3개월 차의 출연자였다. 물론 실질적인 기간은 3개월밖에 안 되었어도, 법적인 숙려 기간이나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려하면 짧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테다. 그래서 그냥 그 출연자의 등장은 잠깐의 의문만 갖게 하는 것에 그쳤다.
그런데 우리말을 구사하는 능력이 어눌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그런 출연자들을 욕하며 본 것 같았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외국 현지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혹은 우리나라에서 살다 이민을 간 사람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된다고 했다. 그들이 1세대건 2세대건 간에 우리말을 구사하는 정도를 보면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서 우리보다 사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말을 꽤 오랜 기간까지 기억하고 있고 또 우리말을 구사하는 데에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였다. 반면에 흔히 말하는 선진국으로 간 이들은 2세대는 두말할 것도 없고, 1세대들도 우리말을 어눌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런 걸 문화적 사대주의라고 일컬었다. 우리말보다 영어가, 프랑스어가, 독일어가 훨씬 격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물론 현지에서 보다 더 빠르고 원만하게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먹고사는 데 바빠 굳이 모국어라는 이유로 우리말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간혹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솔직히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미국에, 캐나다에, 호주에, 프랑스에, 독일에 가서 오래 살면 저렇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에 출연자 몇몇이 우리말 표현이 서투르다 보니, 미묘한 감정이나 느낌을 말하고 싶은 순간이 되면 아예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친절한 방송국에선 둘의 대화를 자막으로 처리했다.
이런 것도 내 생각이 고루한 탓일까? 내게 그들이 굳이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들의 모습은 충분히 내게 꼴불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