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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12. 2023

진통제 유혹

0426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진통제는 세 가지 중 하나다.

아스피린이라고 불리는 아세틸 살리실산, 타이레놀의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 부루펜으로 익숙한 이부프로펜 등이다.

이들은 비마약성 진통제로 처방전 없이도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잦은 통증에 노출된다.

모든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는 마취제(anesthetic)와는 달리 진통제(analgesic)는 오직 통각만을 통제한다.

아픈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무기력하게 하거나 감정마저도 흐트러뜨린다.

이럴 때에 진통제는 얼마나 손쉬운 구원의 손길인가.

세상 무너질듯한 고통이 어느덧 알약 한 알에 봄눈 녹듯이 사라지는 경험을 해본 이들은 안다.

진통제의 양면성은 사색할 화두가 될 수 있다.

진통제는 고통의 원인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복용한 이들은 착각을 할 수 있다.

다 나았구나!

일시적으로 아픔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환희를 느낀다.

치료가 아닌 진통 그 자체가 함정이다.

뇌를 속일 뿐 병을 속일 수는 없다

가끔씩 나쁜 자기 계발서는 본질을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독자의 통증을 둔감하게 해 주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 나의 문제가 해결되어 덜어진 느낌만 안겨준 채 책을 덮게 하는 진통의 책들을 주의해야 한다.

나는 최근 한 움큼의 진통제를 끊어버렸다.

복용 후의 폭풍 전야가 싫었다.

고요하지만 평화롭지 않은 상태는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고스란히 통증을 마주하기로 했다.

하나씩 정면승부하며 원인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복용하는 진통제가 천정 효과(Ceilling effect)가 있다지만 진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뎌지거나 원인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 같아 정신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몸이 내게 통증의 시그널을 주는 것은 그 바삐 걸어가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라는 의미다.

몸에게 소홀했던 습관과 버릇들을 다시 살피고 패턴을 고치고 재정비하라는 엄중한 경고다.

문제를 외면하다가 어설프게 죽으라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다시 살아보라는 것이다.

진통제 복용은 엄동설한에 벗겨진 신발을 주워 고쳐 끈을 매지 않은 채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건 아닐까.

지금은 발이 얼어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감각 무디게 걷지만 봄이 되면 내 발은 더 큰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것이다.

자꾸 예쁜 활자로 나를 속이는 책을 덮어야지.

자꾸 아픈 감각을 잠깐 속이는 약을 버려야지.



|덧말|

이 글은 진통제 무용론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진통제에 의존해서 본질적인 치료에 둔감해지거나 유보하는 저 자신을 질책하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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