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번째 글: 저럴 거면 굳이 뭐 하러 딱 붙어있는지 모르겠네요.
생텍쥐페리는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고 해서 그의 사랑론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지구상의 70억 명의 인구가 각자 내린 정의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우스갯소리로 떠오르는 얘기가 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 여기서 로맨스냐, 불륜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로맨스가 혹은 불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화두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대단한 화두라는 것이겠다. 언제 어디에서든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사랑이라는 것이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막론하고 다들 한 번씩은 사랑에 빠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일 수 있다는 것이겠다.
오늘도 집 앞 파스쿠찌 매장에 왔다. 캐러멜 마키아또 한 잔을 놓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한참 전부터 왼쪽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손님이 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좋게 봐주면 20대일 것 같지만, 솔직히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린 손님들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남자 손님은 교복까지 입고 있다. 참으로 당돌하고 용감한 녀석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딱 붙어서 끌어안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서 저런 아이들을 보면 사람 많은 데에서 뭐 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보다는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적어도 내가 어릴 때에는 저렇게 할 수 없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만약 내가 다시 3~4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저렇게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행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저 아이들이 한참 전부터 생텍쥐페리의 사랑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음, 글쎄 뭐랄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최소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 이게 내 지론인데, 아까부터 저 아이들은 그런 나의 통념을 깨고 있다.
그 둘은 나를 보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편한 좌석이 준비된 벽 쪽에 기댄 채 맞은편인 바깥 전면 유리창쪽을 보고 있다. 그쪽을 보고 있으려면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볼 수밖에 없다. 쳐다보지 않는 척하면서 연신 그 둘을 난 관찰하고 있다. 맞다. 아무리 봐도 정확히 생텍쥐페리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거의 서로 쳐다보는 일은 없다. 하긴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도 옆에 앉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는 일은 없겠지만, 팔짱을 허리에 그리고 어깨에 두른 채 앞만 보고 있다. 그러면 나머지 한 손은 뭘 하고 있을까? 맞다.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다 가끔씩 목이 마르면 음료를 홀짝홀짝 들이킬 뿐이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라서 좀 그렇긴 하지만, 나란히 앉아서 스킨십이라도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는데, 고작 옆에 앉아서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다. 그것도 어딜 도망가지 말라는 듯 한 손은 상대에게 걸쳐 놓은 채 말이다. 저 두 사람을 보면서 계속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저럴 거면 굳이 왜 같이 앉아 있지?'
그것이 아마도 저 시대의 아이들(?)이 하는 사랑 방식인가 싶기도 하고, 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도 앞으로 저런 사랑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직 정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한 녀석은 21살이고, 또 한 녀석은 18살이니 이성 친구가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아무리 부모라도 이성 친구 영역은 내가 터치할 부분이 아니니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저런 모습이 사랑의 한 전형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대는 참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요즘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