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첫째 날인 어제, 전날 잠을 1시간 반 정도밖에 못 잤는데도 불구하고 예상한 것처럼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힘이 남아돌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루 동안 그다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건 없고 머릿속에 잡생각만 남아 있으니 잠이 오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청소년 수련원이라는 곳에 입소해 캠프를 진행하고 있고, 엄연히 당직 근무를 서는 원 측의 직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또 별도로 밤에 불침번 제도를 시행해야 했다.
참석한 인솔 교사 중 한 분이 불침번을 자청했다. 그는 남학생 숙소와 여학생 숙소 가운데에 긴 책상을 두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면서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무려 6시간 동안 혼자 불침번을 섰다. 내가 어제 캠프단에 합류했는데, 캠프가 시작된 첫날인 그저께 그렇게 불침번을 섰다고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솔교사 중 한 사람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생님이라 불침번을 설 수가 없고, 나머지 한 분은 여자 교감선생님이었으니 세우기도 마땅치 않아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은 교감선생님 대신 내가 인솔 및 지도를 담당하게 되었으니 혼자 불침번을 서는 그 젊은 선생님을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트북으로 작업이 가능하다고 해도 남들 다 자는 밤에 눈을 뜨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피로는 가중되기 마련이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 몹시 피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잠이야 정 안 되면 조금 더 늦게 자면 될 테다.
그 선생님에게 같이 하자고 말하고는 불침번 대기 장소로 갔다. 책상 위에 2대의 노트북을 나란히 놓고 각자 작업을 하면서 임무를 수행했다. 간간이 간식도 먹어가면서 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무사히 불침번 역할을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나 역시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같이 불침번을 섰다.
다행히 동학년 선생님이라 평소에도 대화를 자주 나누는 사이였다. 그런데 대화라는 게 그런 모양이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무려 6시간 동안 우린 참 많은 얘길 나눴다.
아무래도 가장 이슈가 된 것은 현재 교권과 관련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현직 교사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그 선생님과 이제는 슬슬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내가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보다 더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반적인 얘기를 나눠 본 소감은 그랬다. 그나 나나 교권 회복을 위한 지금의 이 몸부림들이 그다지 밝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할 확률이 높을 거라는 우리의 생각이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현재 매스컴에 보도되는 내용들을 미루어 판단해 보자면 교육부에선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많은 공청회와 여론 수렴의 과정에서 얻은 생각들은 어디로 갔을까? 과연 현실적으로 쓰임새가 있을지 없을지는 2학기를 시작해 보면 알 수 있을 테다.
이제 스물다섯 살인 그 선생님과 그보다는 두 배하고도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내가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꼰대 티를 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업적인 특성상 상대방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것 역시 곤란한 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의 대화 스타일을 내가 어떠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 말은 내가 아무리 노력했다고 해도, 그 선생님에게 꼰대 티를 냈다거나 그를 가르치려 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세대의 차이를 극복하고 긴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꽤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