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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Aug 27. 2023

삼십 분의 비

쉰두 번째 글: 진짜 비가 왔어요!

어딜 가든 늘 메고 다니는 백팩이 있다. 브랜드가 뭔가 싶어 봤더니, "American Tourister"였다. 이 가방을 메고 다닌 게 얼핏 잡아 3년은 된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브랜드 이름을 확인했다. 처음 듣는 브랜드였다. 이런 브랜드도 있나 싶어 검색해 봤더니, 무려 미국의 수하물 제조업체라고, 쌤소나이트의 자회사라고 했다. 순간, 오, 쌤소나이트, 하며 약간 탄성을 질렀다. 아무리 브랜드엔 무감각한 나 같은 사람도 쌤소나이트라고 하면 일단 가방 전문 제조업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내가 중저가 브랜드라도 차리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내의 배려 때문이다. 나가서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꾀죄죄한데 옷까지 허름한 것을 입고 있으면 사람을 얼마나 아래로 보겠냐는 게 아내의 지론이다. 그런데 나는, 아래로 보려면 봐라, 나도 그런 인간들은 상종 안 한다, 이게 내 지론이다. 그러니 늘 입고 신는 것 등으로 아내와 부딪칠 때가 많다. 어떤 친구는 그런 내게 복에 겹다고 했다.

난데없이 웬 브랜드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난 브랜드에 별로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내가 입은 윗옷을 보고, 누군가가 노*페*스네요, 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 그런가요, 전 잘 몰라서요, 하는 식으로 응수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브랜드 다음으로 무신경한 것이 아마도 내게는 날씨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 오십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아직까지도 난 일기예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뉴스를 봐도 날씨만큼은 건성으로 본다. 내일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하니 어떻게 차려입고 나가야겠다거나 비가 온다고 하니 우산은 꼭 챙겨야겠다는 다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그 백팩 바깥 주머니 한쪽에 늘 접이식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일 테다.


우연의 일치인지, 어제 이 매거진에「비가 온다면」이란 글을 썼었다. 맞다, 어느 정도의 간절함은 있었다. 날씨 중에 비가 오는 날을 가장 싫어하는 내 입장에선 비를 기다린다는 건 의외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바란 건 그만큼 이 폭염에 질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오늘 거짓말처럼 비를 만났다. 마침 그때 파스쿠찌에 글 쓰러 가겠다며 노트북 등을 가방에 챙겨 넣던 터라 적잖게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며칠 만에 만나는 비가 너무도 반가웠다.

'어제 내가 쓴 글을 하늘도 봤나 보군.'

꼭 그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비가 그칠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며 차를 한 잔 마셨다. 한두 시간 늦게 간다고 멀쩡히 있던 파스쿠찌 매장이 어디 다른 데로 갈 리도 없고, 머릿속에 잘만 붙잡아 둔다면 글감이 증발할 일도 없을 터였다.


대략 30분 정도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온 세상이 말끔해진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더위가 많이 누그러졌다. 물론 며칠 전부터 그 기세가 확실히 덜해지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잠깐의 비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다.

마침 파스쿠찌 매장에 오니 가장 선호하는 자리인 창가 자리가 비어 있다. 어제 같은 경우엔 거의 직사광선이나 다름없는 강렬한 빛이 내리쬐던 곳이었다. 비가 더 올진 모르겠지만, 뭔가를 잔뜩 머금은 듯한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오늘 창가 자리는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만만찮고 오고 가는 차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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