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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02. 2023

위로? 아래로?

쉰여덟 번째 글: 아직 최소 5년은 남았는데요?

현재까지 경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무려 24년째, 물론 나보다 더 교육경력이 많은 분들도 있으니 어쩌면 겨우 이 정도 경력으로 어디 명함이라도 들이밀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튼 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흔히 나 같은 사람에게 쉬운 말로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4년 외길 교육의 길을 걸어왔으니 그 정도 연륜이면 베테랑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이 낱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겸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난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말이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아이들을 위해서만, 교육을 위해서만 그 많은 세월을 감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말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든 삶에 있어 부끄러움 투성이일 것이다. 사실 나는 교사이기 전에 누가 뭐라고 해도 밥벌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순 없다. 그래서 어쩌면 정작 입을 열어야 할 순간에 침묵하기도 했을 터였다. 아마도 그때는 점잖은 성격이라 나서지 않음을 합리화했을 테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나서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대신 전달해 주는 것에 그저 박수만 보내고 있었을 터였다.


학교라는 공간은 그렇다. 교장과 교감 등의 관리자가 있고, 그 아래에는 부장교사들이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교사에 속한다. 굳이 여기에 한정해 생각해 보자면 지금 나는 부장교사 직책을 맡고 있다. 좋아서 자발적으로 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할 사람이 부족해 누군가가 떠밀려 그 임무를 맡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도 '좋아서'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부장교사에 딸린 점수가 필요하고, 그 점수는 물론 승진에 필요한 점수가 된다. 필요해서 부장을 맡은 사람들의 입장에선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이 부장교사라는 자리가 참 어중간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해도 평교사들은 대체로 자기 할 말 정도는 하며 살아간다. 논리상으로는 정반대의 것이긴 하지만, 관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 역시 입에 뭔가를 담아놓기보다는 아랫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요구를 드러내곤 한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대놓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이러기 위해서 승진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가장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부장교사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부장교사들 중에서도 교감으로의 승진을 준비하고 있거나 승진을 목전에 둔 부장교사들은, 시쳇말로 관리자들이 죽으라고 하면 언제든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일반 교사의 교감으로의 승진에 있어 생사여탈권은 당연히 교장과 교감의 손에 있다. 표면적으로 승진에 필요한 근무평정점수를 교장과 교감이 부여한다고 되어 있지만, 거의 100% 교장의 영향력에 달려 있다.

외부에서 필요한 점수를 모두 취득한 (승진을 준비 중인) 교사가 있다고 하자. 승진 관련 서류가 교육청에 전달되는 시점까지의 각종 실적 중 '최근 5년 동안 3번의 1수 받기'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1수는 쉽게 말해서, 한 학교에 근무 중인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인성이 뛰어나고 가장 근무 태도가 좋으며 가장 학생 지도 실적이 좋다는 것을 증명한 것을 말한다. 물론 이 1수는 당연히 교장과 교감이 부여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교장의 입김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교장이 '1수'를 주려는 마음이 없는 교사에게 교감이 마음대로 '1수'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1수'와 관련한 문제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4년 동안 2번의 1수를 받았는데, 5년째에 1수를 받지 못하면 승진이 한 해 더 밀리게 된다. 게다가 앞의 두 해에 1수를 연속해서 받았어도 남은 3년 동안 남은 1번의 1수를 받지 못하면 5년이 경과하자마자 앞서 받았던 2번의 1수는 날아간다. 그러면 이 사람은 4년 안에 2번의 1수를 받아야 승진을 하게 된다. 이만하면 교장이 얼마나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물론 인간적이지 못한 교장들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웬만하면 승진을 앞둔 사람에게 어떻게든 그가 승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인 것은 맞지만, 구조적으로 교장에게 입바른 소리는 꿈에도 꾸지 못하는 그런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 이런 교장의 권위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근무성적평정점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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