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무게
예순한 번째 글: 나이를 먹는다는 것
한 직장에서 24년을 몸담아왔다. 그리 긴 시간이라고는 못해도 짧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할 시간들일 테다.
어제 '공교육 멈춤의 날'로 인해 한꺼번에 서너 개 반을 돌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부산함은 있었지만, 학교에 오지 않은 선생님들은 밖에서 그들의 소임을 다 했고, 남은 우리들은 일종의 내조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분명한 건 어제 그 일은 내게 그 어떤 스트레스도 주지 않았다.
정작 내가 어제 격분한 건 전혀 다른 데에 있었다. 현장체험학습과 관련한 불법 차량 탑승 문제, 사고 발생 시 벌어질 민사 분쟁에 대한 우려를 담아 전 교직원 카톡에 올렸다가 관리자에게 불려 가 욕을 먹었다. 어쩌면 그리도 당당한지 그들은 내게 그런 글을 전 교직원들이 보는 공용 공간에 생각 없이 덜컥 올리면 안 된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그랬다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을 테지만, 나처럼 경력도 적지 않고 나이도 있는 사람이 너무 경솔하게 행동했다는 질책을 들었다. 그냥 한 마디로, '도대체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무슨 짓거리냐'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화가 나 그들에게 대거리를 했다. 내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지만, 한창 얘기를 하다 보니 더 얘기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서 꽤 오래전 별 뜻 없이 했던 내 행동까지 들추고 나왔다. 그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작년에는 안 그러더니 올해 부장교사를 맡고부터는 자꾸 나서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마음이 상한 게 이 부분이었다.
물론 내 의견을 표현함에 있어 언어 선택에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어제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알 게 된 것이 있다.
이 나이 먹어서 내 의견을 피력-그것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모두가 관련이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하면, 그걸 단적으로 '나선다'는 표현으로 맞서는구나 싶었다.
시쳇말로 관종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말을 할 때 빨리 몸을 빼게 된다. 거세게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지레 겁먹듯 저절로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게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일방적으로 훈계하는 교장, 마치 아이 다루듯 나긋나긋하게 얘기하는 교감, 그들은 말했다. 승진을 생각 중인 사람이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을 보면서 인간적인 모멸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들의 말처럼 나이 먹어 괜히 나선 것에 대한 응당한 대가일까?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불쾌했다. 교장실을 나서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