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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05. 2023

관계 노이즈

0450

모든 관계에는 노이즈가 발생한다.

자동차소리도 내연기관에서보다 타이어가 노면에 마찰해 나는 소음이 더 크다.

개개인의 목소리보다 상호 간의 심리가 더 요란하다.

잡음은 사운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사이에서 생성되는 노이즈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

이기와 이타의 차원이 아니다.

드러내고자 와 드러내지고자 혹은 알리고자 와 알려지고자의 간극에 있다.

그것은 일이 일어나는 순간에 포착되는 것이 아닌 이후의 잔상에서 얼핏 비친다.

그래서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갈등과는 구분된다.

갈등은 상호적이나 관계 노이즈는 그렇지 않다.

한 곳에 치중하거나 집단적으로 용인된다.

이를 두고 시간을 보내며 반복되면 정서가 되고 문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문화는 일방적으로 옳지도 않고 이상적일 수도 없다.

문화 또한 관계에서 형성된 노이즈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람 같아서 느껴지지만 가시화가 어렵다.

바람 자체보다는 흔들리는 꽃잎으로 감지할 뿐이다.

낯선 관계일수록 이에 관대하거나 날카롭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건 그럴 수 없음의 관점이 구 할이다.

논리적용과 이해수용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옳고 그름은 지향점이 아니다.

칼자루를 잡고 싶은 것보다 쥐어주고 싶지 않음이 크다.

관계 노이즈는 인간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취하자니 성글고 피하자니 불가피하다.

매번 마주한 후 그 자리에 둔 채 헤어진다.

미안하면서 서운하다.

석연치 않은 채로 당기고 미덥지 않으면서 건넨다.

마주 보고 한바탕 크게 웃으면 사라질 줄 알았다.

표면의 먼지만 날아가고 뼈대는 고스란히 앙상하다.


나와 타자 사이에는 반드시 노이즈가 일어난다.

문 아래 처럼 어쩔 수 없다.

문 아래 라 어찌할 수 없다.

사람도 허공도 세월도 모두 노이즈를 낳고 기르고 어쩌지 못하다가 그것에 둘러싸여 고통받다가 그것이 전부였음을 끝내 인정하고 만다.

노이즈가 한켠으로는 외로움으로 한켠으로는 고독으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https://brunch.co.kr/@heesoo-park/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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