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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07. 2023

한 줌의 의지

예순세 번째 글: 정말 이것만 있으면 될까?

어떠한 뜻을 세워 이루려는 마음을 굳세게 지켜 나가는 힘을 의지력이라고 한다. 이런 의지력을 두고 한 줌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딱 한 줌만 있어도 원하는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뜻대로 안 된다. 하긴 인생이라는 것이 뜻하는 대로 다 될 리야 없겠지만, 담배를 끊고 싶다는 걸 두고 욕심이 많다고 표현하진 않으리라.


정확히 스무 살 11월부터 무려 32년을 피워 온 상태다. 좋은 것도 아닌 걸 너무 오래 지속했다는 생각뿐이다. 기회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끊었으면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물론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안다. 말은 금연을 다짐하고 있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결심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래전에 큰 마음먹고 딱 5개월 정도 담배를 손에서 놓은 적이 있었다. 처음 2~3일이 고비였다. 시쳇말로 앉으나 서나 담배 생각뿐, 뭘 하든 불안했고 마치 수전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손까지 떨렸다. 대략 열흘 정도를 넘기고 나니 생각보다 많이 편해졌다. 장소를 이동하는 일이 생겨도, 한 가지의 일을 끝낸 뒤에도 담배가 생각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난 뒤나 식사가 끝난 뒤에도 담배부터 찾지 않았다.

그대로 버틴다면 드디어 성공하겠다는 나름의 확신이 생길 때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 뭐 굳이 변명하자면 그때의 나로선 맨 정신으로 그걸 이겨낼 수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어느새 내 손엔 불붙은 한 개비의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정확히 그 당시에 왜 다시 담배에 손을 댔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마땅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물론 그때 담배라도 피우지 않았다면 그 많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그때를 회상하던 친구가 내게 그랬다. 그때 담배라도 있었으니 어쨌거나 그 일이 탄하게 흘러간 것이라고 말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다. 핑계인 걸 뻔히 알면서도 당연하다는 듯 피워 왔다.


왜 그러면 그때 끊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 담배를 다시 피울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내면의 속삭임에 넘어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게 물으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담배를 그만 피우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상대방이 믿건 말건 간에 내게도 담배를 끊을 의향이 있다는 걸 괜스레 내세우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이젠 그렇게 자꾸 말로만 실천 의지를 다지는 것은 모양새가 빠지는 일이란 걸 말이다.

결국은 나 스스로 증명하고 만 셈이다. 앞의 말을 한 번 더 반복하자면 아직 담배를 끊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나도 몸에서, 손에서, 그리고 입에서 더 이상 담배냄새를 풍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함께 있든,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 신경 쓰지 않고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다.

딱 한 줌의 의지력만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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