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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Sep 10. 2023

쓰기 싫은 날

예순여섯 번째 글: 나는 슬럼프를 이렇게 맞이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뭔가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컨디션도 별로인 것 같고 무슨 생각을 떠올리든 그 생각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보통은 생각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인데, 오늘은 금방 다른 생각으로 전환되곤 했다. 게다가 시간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멍한 상태가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물론 내게 새롭게 생긴 심정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다만 최근에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도 예상이 맞다면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몇 안 되는, 글이 무척 쓰기 싫은 날 말이다. 길면 몇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오고, 짧아도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이 드디어 내게 찾아온 것이다. 내게 있어서 글이 쓰기 싫은 날은 운동선수가 겪는 일종의 슬럼프와 같다. 슬럼프는 어찌 되었건 간에 시간이 가면 자동적으로 해결이 된다. 다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슬럼프의 기간을 줄일 수도 있고, 반대로 늘어날 수도 있을 테다.


주변 사람들에게 슬럼프를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당분간은 푹 쉰다고 했다. 최소한 몸이라도 푹 쉬다 보면 정신이 맑게 개는 순간이 오고, 바로 그때에 자기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행여 슬럼프에도 물고 늘어지는 어리석을 행동을 하다 자칫하면 영영 그 일이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의 말처럼 사실 글이 쓰기 싫은 날은 고민할 것 없이 안 쓰는 게 상책이라는 걸 나 역시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적어도 내게는 그게 잘 안된다. 그냥 오늘은 컨디션이 영 아닌가 보다 여기고 하루 푹 쉬면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미련스럽게 다시 노트북을 펼쳐 글을 끼적이고 있다.

그게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의 나의 대처법이다. 누군가가 그건 그다지 바람직한 대처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질리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랬다. 슬럼프라고 생각했을 때 쉬어 버리면 슬럼프를 극복하고 나서도 쉬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손을 놓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붙들고 있어야 나는 직성이 풀린다. 마치 잠시 엄마의 손을 놔도 되지만, 한 번 놓으면 영원히 엄마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에 두려워하는 아이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글이 무척 쓰기 싫은 날에 어떻게든 다소 질이 떨어지는 글이라도 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럴 때에는 과감히 미련을 접고 두뇌에 하루의 휴식을 주는 게 좋은지를 말이다. 사실 생각해 보나 마나 한 일이다. 이미 내 입장은 전자가 옳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이란 게 그렇지 않겠는가? 또 글이라는 게 그렇지 않겠는가? 쓰다 보면 40점짜리 글을 쓸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에는 10점에도 못 미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40점짜리 글도 내가 쓴 글이고, 10점짜리 글도 내가 쓴 글이라고 말이다. 비록 10점짜리 글밖에 쓰지 못했어도 내 기본적인 믿음은 그렇다. 쓰지 않는 것보다는 그런 허섭스레기의 글이라도 쓰는 게 더 낫다고 말이다.


사실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내가 뭐라고, 하루 글 안 쓴다고 누구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을 것인데, 왜 나만 이렇게 마치 끼니를 때우듯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 터무니없는 강박증이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지금으로선 내일도 이런 기분이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오래간만에 맞이한 슬럼프를 딛고 오늘도 글을 썼다. 지금 이 글이 10점짜리 글이건, 심지어 5점도 안 되는 글이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글을 썼다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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