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Sep 20. 2023

아무도 시킨 적이 없는 글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을 때 써야 합니다.

어느덧 이곳 다음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온 지 대략 100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쓴 270여 개의 글을 떠올려 봅니다.

매일 고정적으로 쓰는 두어 편의 글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수필에 가까운 글이겠으나, 저의 주 종목은 소설 쓰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등 떠민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절박한 이유도 없는데, 지금껏 전 이러고 있습니다.


어떤 이의 말처럼 소득 없이 이런 고리타분한 일에 매달리느니 골프라도 배운다면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기차, 버스, 지하철 안에서 두 눈 부릅뜨고 스마트폰 키패드를 두드려 대느니 어딘가에 기대어 잠시 눈이라도 붙이는 게 그나마 피로를 풀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지 습니까? 조금도 피로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졸음이 쏟아지다가도 글을 쓴답시고 허리를 곧추 세우면 이내 잠이 달아나고 맙니다.




솔직히 글 실력은 아직 형편없습니다. 다만 소재에 대해서 만큼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습니다. 아마도 한동안은 마음껏 퍼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든 어디에서든 제 손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만 있다면, 그리고 30분 정도의 시간만 준다면 한 편의 글을 너끈하게 쓸 수 있습니다.

모든 건 훈련하기 나름인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단련해 왔기 때문인지 이젠 소설을 제외한 일반적인 수필에선 30여 분을 넘기는 일도 손에 꼽을 만합니다.


그렇게 써오면서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글의 꼴만 갖추었다면 세상에 내놓는 것이 싸안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글의 만족치로 볼 때 이만하면 됐어, 하는 순간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니다. 왜냐하면 알게 모르게 내적인 기준점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막 한 편의 글을 써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발행을 망설인다면, 설령 수십 수백 번의 퇴고를 거친다고 해도 그 글은 발행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글을 쓸 때에는 신중하고 신속하게 쓰되, 발행할 때에는 과감하고 뻔뻔하게 하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어떤 글이든 우리 내적인 기준치를 넘어서는 글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저의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주옥같은 글도 우리의 개인 노트나 일기장에 고이 간직되어 있어서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이라면, 그 글은 가치라는 측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수 없는 것은 물론 글로서의 생명력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압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글이라는 게 우리가 마음먹었다고 해서 언제든 어디에서든 일사천리로 써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글은 쓸 수 있을 때 써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거기에 조금만 더 욕심을 낸다면 글은 써지지 않을 때에도 결코 멈춰 선 안 됩니다.

그렇게 계속 써내려 가다 보면 언젠가는 글이 풀리지 않는 날도, 키보드나 키패드를 두드려대거나 혹은 노트에 펜으로 휘갈겨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조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검열관과의 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