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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1. 2023

모든 것은 때가 되어야......

바늘허리에 실 매어 못 쓰지요.

악기를 배우는 사람은 악기교본이 있어야 보다 효율성 있는 연습이 가능합니다. 또 특정한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교본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글쓰기에 있어서의 교본은 어떨까요?


고등학교 때 태권도 품새 중 태극 5장을 한창 연습하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옆에서 금강 품새를 연습하던 어떤 형이 '학다리서기' 동작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작이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을까요? 도장에 아무도 없을 때면 전 무턱대고 학다리서기를 줄곧 연습했습니다. 적어도 그땐 제 동작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태극 5장을 마치고 6장, 7장, 8장을 거쳐 1년 동안 고려를 수련한 뒤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품새가 금강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말이지 주제를 모르고 날뛴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맹렬히 학다리서기 연습을 하고 있는데 등뒤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이놈아! 바늘허리에 실 매어 못 쓰는 법이다."

관장님의 호통에 두 번 다시는 그 동작을 연습할 수 없었습니다.


1년 반 정도 뒤에 전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금강을 연습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문제의 그 학다리서기 동작이 꽤 근사하게 나오고 만 것입니다. 이미 태백에 들어선 그 형이, 자기를 보고 그렇게 따라 하더니 제법이네,라고 했지만, 관장님은 품새가 그냥 아무 동작이나 조합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 그 특정한 동작들을 소화할 만한 내공이 쌓여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동작들로 구성된 것이 태권도 품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제 글쓰기로 방향을 틀어볼까 합니다. 글쓰기 관련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지 않은 분이 과연 있을까 싶을 만큼 글쓰기 책은 넘쳐납니다. 심지어 따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그 종류나 양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200여 권이 넘는 글쓰기 책을 읽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 많은 책들이 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단연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별 도움이 안 되었거나 혹은 전혀 쓸모가 없었습니다. 물론 더러는 '아, 이렇게 쓰라는 얘기구나.' 하며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막상 제가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이렇게'는 온데간데없습니다. 기껏 해 봤자 유명한 글쓰기 강연을 들은 것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본 대로 읽은 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건 마치 다이어트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수필을 쓰고 싶은 사람이 수필 쓰기 책을 읽는다면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약간의 도움은 될지언정, 오롯이 참고가 되는 사람은 바로 어설프게라도 혼자의 힘으로 수필을 써본 사람입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소설을 써야지, 하고 결심한 사람이 소설 쓰기 책부터 집어든다면 그건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됩니다. 소설 쓰기 책은 그 누구도 아닌 한 편의 소설이라도 써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내용으로 설명해 놓아도 소설을 써본 사람은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당장 책에서 제시하는 대로 소설이 구성될 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되어야 합니다. 꽃이 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열매도 가장 적당한 때를 기다려 결실을 맺듯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때가 되어야 성과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이젠 떨어질 때가 되었겠지, 하며 아무리 입을 벌리고 감나무 아래에 앉아 있더라도 감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정말 글을 쓰고 싶다면 글쓰기 책부터 덮고 글을 쓰십시오. 바늘허리에 실 매어 못 쓰는 법이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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