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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Sep 20. 2023

글쓰기, 검열관과의 동행

아시죠? 검열관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그에게만 느껴지는 하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내면의 검열관, 또는 편집자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글을 쓸 때뿐만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의견을 발표해야 할 때, 친구와 대화할 때, 그림을 그릴 때, 노래를 부를 때, 심지어는 외출 준비를 하며 옷장을 뒤적일 때도 이 존재는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글이 너무 진부한데?”, “색다를 게 없어.”, “좀 더 톡톡 튀는 걸 쓸 순 없어?”, “그 말을 그렇게 하면 되겠어?”, “저 사람들이 널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기나 해?” 같은 말들입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검열관의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무시해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검열관의 요구를 다 맞추면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면 글쓰기를 중단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검열관의 요구 수준은 상당히 높아서, 초보자에게도 자비가 없습니다. 이제 막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갖다 댑니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그 작품을 떠올리며, ‘내 글은 너무 진부해’라며 편집자의 목소리에 금세 동조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검열관을 무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제가 사용했던 두 가지 장치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아침 첫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첫 시간 30분에서 40분 동안에는 검열관의 힘이 가장 약한 때라고 합니다. 아침 시간에 몽롱하긴 하지만 정신은 맑은 경험을 다들 한 번쯤, 아니 오늘도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칸트 같은 분들도 아침 첫 시간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검열관은 ‘생각’하게 하는 녀석입니다.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고, 결국은 글을 못 쓰게 합니다. 아침 첫 시간에는 이 ‘생각’의 작용이 가장 둔합니다. 그만 생각하고 일단 써내려 갈 수 있는 시간이 아침시간인 것이지요.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해 보는 것, 이것을 연습할 수 있는 시기로 아침 첫 시간만 한 것이 없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더해주는 삶의 활력은 일종의 ‘덤’입니다. 이런 게 바로 미라클 모닝인 것이지요. 


두 번째는 처음부터 글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창작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글을 공개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리 아침시간이라도 검열관 녀석이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검열관이란 곧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보일지’, ‘제대로 전달은 되는지’ 뭐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만의 노트에다가 글을 썼습니다. 글이 글 다 운 지 같은 질문은 최대한 무시하고, 내용도 아무렴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쓰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심지어 저 자신도 처음 한 달간은 다시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쓸 것이 있는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자리에 앉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첫 문장을 고민하거나 주제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고 막 써내려 갑니다. 어느 때는 꿈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몸의 컨디션 이야기가 먼저 나오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있는 날은 욕지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 줄 쓰다가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고, 표면에 있는 말을 빙빙 돌려하다가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글을 써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생각’하느라 꺼내지 못했던 내 속마음도 알 수 있게 되고, 글쓰기 연습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점차로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속이 튼튼해진다고 할까요, 한층 더 탄탄한 인간이 되어 갑니다. 


요약하면, 아침 첫 시간에 30분에서 40분가량 생각하지 않고 나만 보는 글을 써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몇 번만 하더라도, 이 시간이 주는 힘과 활력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글을 공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도 그렇지만 글이라는 것도 결국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꺼내고 타인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도 싶습니다. 검열관을 무시하는 연습을 좀 하긴 했지만, 글을 공개하려고 하면 검열관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자기 검열에 다른 사람의 시선까지 겹쳐지면서 글쓰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혼자 글쓰기를 통해 좀 단련이 되신 분들이라면 검열관이 몇 마디 하는 것쯤이야 이겨내고 첫 글을 무사히 발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몇 달간 글을 발행해 왔습니다. 검열관의 목소리는 차츰 약해지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어제는 도통 글을 발행하기 어려운 날이었습니다. 이런저런 글을 쓰기는 했지만 왜인지 발행버튼을 누르기가 어려웠습니다. 검열관이 작용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끝까지 무시하고 글을 발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검열관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이 원하는 게 뭘까?’하고 말이지요. 


처음에는 이 녀석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으니, 최대한 무시하고 글을 쓰는 연습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이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싶습니다. ‘읽을만한 걸 써라.’라든가, ‘깊이 있는 글을 써라’ 같은 말 말이지요. 


왜인지 이제는 검열관을 아예 무시해 버리기보다 그의 말을 조금 들어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쓰는 데 조금 딴지를 걸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더 고민하고 고뇌한 결과를 글로 써내야 읽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나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읽히는 글은 꼭 쉽게만 쓰이지 않는다는 격언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검열관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처음 글을 쓰려고 할 때는 글을 못 쓰게 하는 주범이더니, 이제 좀 익숙하게 글을 쓰고 있는 때에도 여전히 검열을 하려 드니 말이지요. 이 녀석을 구슬려서 잘 데리고 다녀야겠습니다. 아주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글을 쓰면 창작자가 마땅히 고민해야 할 고민이나 고뇌를 게을리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고, 너무 이 녀석 편을 들어주면 자유롭게 글을 쓰려는 신나는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고, 세상에 나를 내어놓는 삶을 살려고 하면 검열관과 익숙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말이나 사회적 표준만을 쫓아 살아간다면 평생 검열관과는 마주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시는 분,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하시는 분들은 이 녀석과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최대한 검열관을 무시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드십시오. 글을 쓰시는 분이라면 아침 첫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혹 첫 시간에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처음 글을 쓸 때는 ‘잘 써야 된다.’ 같은 말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일단 쓰는데 집중하십시오. 그렇게 글쓰기가 익숙해질 때 즈음, 검열관에게 휘둘리지 않고 그의 목소리를 한번쯤 들어볼 여유가 생겼을 때, 한번 그의 목소리에도 집중해 보십시오. 그 목소리를 나의 고민으로 가져와 고민하십시오.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검열관조차도 ‘오, 잘 썼는데?’ 하는 글을 써내면 좋겠습니다.


역시나 결론은 균형이 필요하다입니다. 검열관이 너무 큰 소리를 치게 내버려 두어서 도통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아무 검열도 없이 되는대로 글을 막 써서도 안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저 자신과 독자가 보다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어쩌면 또 다른 나인지도 모르는 검열관과 소통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트와일러 타프라는 무용 안무가는 그의 저서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에서 검열관을 뮤즈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입니다. 영감과 재능을 준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묘사되던 검열관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잘 써야 된다는 목소리에만 집중하면 영락없는 검열관이 될 것이고, 뭘 쓰지? 어떻게 쓰지? 하는 고민을 좀 더 하면 때로는 뮤즈의 모습으로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될 것도 같습니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터득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씨름을 해 나가다 보면, 점차 나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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