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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4. 2023

꾼은 꾼을 알아본다고 하지요?

학부모 대면 상담에서 느낀 일

며칠 전 학부모 대면 상담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학부모님과 대면 상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은연중에 그 분과의 상담 시간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학부모 상담이 기다려진다고 하면 뭔가가 어색한 말이 되겠습니다. 솔직히 어쩌면 피하고 싶다면 피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상담하는 학부모님이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의 학급 경영 방침이나 학교에서의 제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항의성(?) 발언이 나올지도 모르니, 학부모 상담이 반갑다면 조금은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제가 그 어머님과의 상담을 기다리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어쩌면 저와 대화의 코드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고, 더 솔직한 심정은 그 어머님께서도 기회가 된다면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상담하기로 한 그 어머님과 종종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 뭐, 교육 문제로 인해 교사 개인의 연락처를 학부모에게 공개하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를 하지만, 제가 있는 학교에선 그런 것 없이 일괄적으로 연락처를 다 공개한 채 학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저는 반 아이들과 단톡방을 운영하고 있고, 학부모님들과도 단톡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스마트한 시대에 가장 빠르게 연락할 수 있고, 가장 빠른 답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카톡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어머님과 개인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아닙니다. 다 아이의 일로 묻거나 대답하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뭐랄까, 그 어머님의 카톡 메시지를 볼 때면 늘 마음이 설레곤 합니다. 그건 카톡 메시지가 아니라 그저 한 편의 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이런 감성이나 생각을 갖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이 늘 들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 어머님의 카톡은 제게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가끔은 새로운 소설의 단서를 얻기도 합니다.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적어도 이 메시지는 그냥 그 자리에서 뚝딱, 하고 쓴 게 아닐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어머님과의 상담에서 그 말씀을 드렸더니 맞다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느냐고 하더군요. 그때 생각한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꾼은 꾼을 알아본다.'

'꾼'이라고 표현해서 뭔가 어감은 이상하지만, 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글을 쓰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그 어머님에게서 발견한 이상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속에서 몇 번이고 게워내고 또 게워내서 쓰신 메시지라는 걸, 그것이 어쩌면 일상적인 수필을 쓰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걸 전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전 어머님께서도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와 관련하여 상담하러 오셔서 난데없이 글을 쓰시라는 얘길 들었으니 그 어머님도 적잖게 당황하셨을 것 같긴 합니다만, 저의 제안을 그 어머님께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전문 작가가 아닌 이상 글 쓰는 데 있어 왕도는 없다고 저는 늘 생각해 왔습니다. 수필을 쓰든 소설을 쓰든 글의 구성이 어떠니 저떠니를 따질 필요도 없고, 조금의 용기만 있다면 애써 쓴 자신의 글을 누군가가 읽지 않더라도 굳이 속상할 이유도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떠한 이유로든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글을 써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것이 많은 사람, 그렇지만 그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에 속하고, 제가 본 그 어머님 역시 그런 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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