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뭔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런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면 아마도 삶이란 꽤 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바라는 대로 척척 이루어진다면 그런 삶에 무슨 성취감이 있을까?
그런데 이건 사실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여기에서 마음대로, 뜻대로,라고 했을 때에는 최소한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당장 날씨만 해도 그렇다. 어제저녁에 빗방울이 돋을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부디 내일 아침에는, 하며 잠에 들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창밖부터 내다보았다. 설마 했었는데 역시나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폭염 때 그렇게 기다리곤 했던 비가 느닷없이 날도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비가 오고 있다.
기억의 오류, 사람은 자기의 편의에 따라 기억을 왜곡시키고 또 조작한다고 했다. 그 지긋지긋한 폭염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최근 몇 년 동안 혹은 기상 관측 이래로 가장 더운 해가 올해라며 심심찮게 얘기했고, 마찬가지로 비가 자주 내릴 때에는 작년에 비해 혹은 요 근래 비가 가장 많이 온다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이런 말이 거짓이란 뜻은 아니다. 실제로 관측해 보면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어차피 기억의 오류를 운운한 이상, 그것이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난 지금 내 편의에 따라 멀쩡한 기억을 왜곡하려 한다. 그게 기상학적 정보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고, 내 기대나 예측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슨 비가 이렇게도 자주 오냐고 푸념을 늘어놓을 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마도 올해가 가장 많은 비를 뿌린 해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려는 중이다. 그나마 쏟아붓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
어쨌거나아침부터 꽤 몸가짐이 거추장스럽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마음마저 쫓기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두 손 중에서 이미 왼손은 고정되어 버렸다. 서 있든 이동하든 젖지 않으려면 우산을 들고 있어야 한다. 오늘 이 녀석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다. 남은 한 손으로 그 나머지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지하철에 올라 한창 글을 적다 지상으로 나왔다. 집을 나설 때만 하던 부슬부슬하던 비가, 이제는 아예 쏟아붓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가 안 올 때에는 비라도 좀 내렸으면 싶었고, 지금처럼 자주 올 때에는 그만 좀 왔으면 좋겠다고 마음먹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랬듯 오늘 아침의 이 비는 조금도 반갑지 않다.
뜻대로 되는 것 없는 이 세상에 날씨라도 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에 빠져 본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출퇴근 시간만큼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