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라 산을 그리워하며 여러 산 줄기를 따라 살아가는 한 사람, 피에트로와, 세상에 중심인 산을 선택해 산으로 살다가 산이 되어버리는 다른 한 사람, 브루노의 이야기다.
둘의 우정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해서 나는 고통을 견뎌내며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애써 살아가려는 두 사람의 투쟁 같은 삶의 서사다 한다.
가족을 거부하거나 가족으로 부터 거부당한 채 외로움을 선택하지만 타인을 통해 치유해 가는 두 사람의 고투에서 큰 공허함이 느껴진다. 둘이 어차피 다른 길을 갈것이란 걸 이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서로 애타게 의지하면서도 모두 다 꺼내 나눌 수 없는 답답함이 애처로웠다. 내 감정의 상태인건가.
이탈리아의 발레다오스타는 알프스의 3대 봉우리가 위치한 곳이다. 저곳이라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할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다운 산맥과 눈쌓인 봉우리들에 호흡이 멎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이 산들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성지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분주히 사는 곳의 사이사이에서 만나는 고난과 고통으로 극복해야 할 곳일 뿐이다.
이 산은, 숨이 가빠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에서 끝만 올려다보고 아쉽게 내려오거나, 때로는 혼자의 순례로 외롭게 걷거나 혹은 여럿이 갈 수 있는 오솔길을 가까스로 내어주는 곳이다.
외롭고 지루한 고투들이다. 우리가 사는 삶과 다르지 않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 걸어가야 한다.
여덟 개의 산과 그 중간의 수미산은 세상 그 자체다. 네팔의 신화 속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한 사람은 여덟 개의 산을 돌며 살고 다른 한 사람은 수미산에서 산이 된다. 두 사람이 만나며 헤어지는 산, 그렇지만 끝끝내 같이 할 수는 없는 삶이 안타깝다.
나는 지금 여덟 개의 산을 돌고 있을까 아니면 세상의 중심인 그 산에 서 있는 걸까.
새를 통한 장례는 거친 산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행하는 의례다. 높은 곳에 둔 시신의 살을 독수리가 모두 뜯어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뼈만 남으면 그 뼈를 갈아 다시 새들에게 먹이로 준다고 한다. 하늘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의식이다.
산이어야만 했던 부루노는 세속의 상처를 안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세상의 중심인 그 산에서 새를 통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돌아가는 길이 자연과 맞닿았으면 좋겠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은 사람 피에트로는 여전히 여덟 개의 산을 떠돌고 있다. 그 중심산에는 가지 않는다. 브루노가 산이 되어버려 이제는 바라볼 수만 있는 곳이 되어버린 탓이다. 자신의 심장이 향하는 곳이기도 한 수미산 정상을 뒤로하고 여덟 개의 산을 끊임없이 돌며 살아야 하는 그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삶에서 만나는 거대한 산들이 우리를 자연으로 돌려놓는 희망일 것이다. 니체도 그랬다지 않는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