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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25. 2023

단단한 서사

0470

난관을 만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서사가 단단해지려나보다


시련이 배제된 서사는 골격이 취약해 환영받지 못한다.

아직은 연약한 서사인가.

최근의 장애물들은 엄청난 서사를 위한 서곡처럼 느껴진다.

진짜 소설도 이렇게 쓰면 개연성이 없다고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우연이 줄거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현실은 우연의 연속이다.

그 흐름이 '희'와 '비'의 반복된 패턴이라면 글로 옮기는 것을 피하는 것이 독자를 위해서 좋다.

억지로 만들어진 가짜 이야기처럼 읽힐 가능성이 높아서다.

허구를 넣어야 한다.

진짜를 가짜로 변형해야 믿을 것 같다.

다지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기존의 형태를 누르거나 밟아서 일그러지게 한 후 단단함으로 성질을 바꾸는 것이니까.

원재료의 모양을 굳이 보존하는 것이 진실을 전달하는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답답해 할 수도 있겠다.

답답한 것들은 단단한 것들이니까 그대는 이미 단단한 서사 안에 들어와 앉은 것과 진배없다.

서사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동일한 이야기에 손을 담글 수 없다.

할 때마다 변화되는 이야기.

시련이 미련이 되는 이야기.

슬픈 서사가 가벼운 저잣거리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나의 서사는 내 안에서만 정당한 진폭으로 공명한다.

아직은 부끄럽고 스스로 노여워서인지 밖으로 나오려면 긴 숙성이 필요하다. 

서사가 가십으로 둔갑하지 않도록 눈 안에 오래 머금고 있을 것이다.

가장 서사가 농익은 그날 내 눈을 빼내 은쟁반에 올려놓고 악기를 연주하리라.

줄이 없는 현악기를 연주하고 구멍이 없는 관악기를 불면서 악보에 없는 음표를 연주할 것이다.

나의 서사는 단단해지는 중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고통은 너무 쓸모가 없어 보여서 처치 곤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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