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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24. 2023

헌책 죽이기

0469

기필코 결단을 내련다.

오래간 두고본 결과다.

소장이 최선은 아니다.

다시볼 이유가 사라진

무수한 헌책을 죽이자.

그동안 재회를 꿈꿨던

그러나 성사가 무산된

수많은 헌책을 죽이자.

어차피 수명을 다했다.

오래된 책들은 먼지다.

건강을 덮치고 해친다.

정신에 기여한 업적을

높이사 화장은 않겠다.

폐지로 환생을 기원해

끈으로 묶어서 죽인다.

애매한 책들이 붙든다.

감정이 깃들면 망한다.

사물에 감정을 거둬야

냉정한 실천이 따른다.

책들은 각각의 추억과

손잡고 버티며 지냈다.

추억을 잊기로 하였다.

연결을 끊으면 단순해

이별이 손쉽고 가볍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다.

오래된 책들은 유해한 대상.

샹송을 크게 틀고 한 권씩 죽인다.

책들의 비명소리가 음악에 묻힌다.

책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 뒷면을 포갠다.

숨막히는 시간들이 흐르고 책장의 구멍들이 황량하다.

음악은 절정으로 달려가고 책의 시체들은 쌓인다.

나는 노련하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처리한다.

살아남은 책들의 숨죽인 환호가 들린다.

밤마다 꿈 속에 죽은 책들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내게 따졌으면 좋겠다.

내 책에서 건질 문장이 그렇게 빈약했니?

아니! 넌 훌륭한 책이었어.

내가 게으른 독자인지도 몰라.

너로 인해 나는 성장했고 새로고침이 가능했지.

내 세포 하나에 너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새겨져 있어.

그래서 보내는거야.

책이 부질없는 육체라면 너의 문장들은 영혼일테니 걱정마! 영원히 널 새기고 있을테니!


수많은 책들을 죽이고나서 마음 속으로 성호를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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