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23. 2023

매듭의 축제

0468

사는 일은 매듭의 연속이다.

매듭은 일과 일 사이의 마무리를 의미한다.

하나의 일이 아닌 일의 연속선 상에서의 사건이다.

다음의 일을 위해서는 앞의 일이 정리되어야 한다.

이때 매듭이 필요하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예식이다.

매듭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건 석연치 않다.

그때마다 이를 표식 하고자 상을 주거나 기념한다.


매듭은 어떤 일의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나 어려운 고비를 뜻하기도 한다.

풀리지 않는 매듭 같은 시간을 보내며 막막해한다.

난관은 꼬인 밧줄처럼 단단하고 무뚝뚝하다.

차분하게 매듭의 엉킴을 풀어내야 한다.

묶인 역순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마치 어떤 두 지점 간에 차로 이동시 갈 때와 올 때의 길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리가 멀수록 희박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의 일들이 그러하다.

호의나 애정의 시간 속에서 묶인 이야기가 막상 갈등과 증오의 시간에서 풀려는 순간 길이 사라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보이스카우트 때 복잡한 매듭 후 간단하게 줄 하나를 당겨 풀어낸 적이 있다.

매듭의 원리가 삶에도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규칙 없고 무자비한 매듭들이 매 순간 우리에게 던져진다.

풀다 보면 끊고 싶다.


하나의 절차를 잘 끝낼 때 매듭짓는다고 말한다.

매듭에 대처하는 바른 자세는 짓는 것이다.

집을 짓듯이 쌓는 것이다.

수평이 아닌 수직의 행위다.

지금이 아닌 앞날을 염려하며 하나씩 조심스레 지어 올리는 일이다.

어리석게도 매듭을 푸는 일에만 집중했다.

아무런 매뉴얼도 없는 수많은 매듭들을 말이다.

매듭은 이름처럼 지어야 한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관심을 부여하고 미래를 북돋는 일이 짓는 일이다.


오늘도 어제 못지않은 매듭의 더미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다시 무수한 매듭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너희들을 지어 올리리라.

매듭 이전의 모습으로가 아닌 매듭 너머의 세계로 쌓아 올려 스스로 풀리게 하리라.

매듭이 더 이상 숙제가 아닌 축제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이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