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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23. 2023

겨울이 온다

살얼음으로도 살아남을 나를 기다린다

오늘 새벽 연필 드로잉 수업에서 가장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 가장 어려운 그림을 그렸다. 갑자기 고민을 점으로 찍으라니! 지금 나의 고민이 뭘까?


근본적인 고민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 빠져있는 고민은 잘 표현하지 못한다.

결국 불안한 그 고민은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다.


아름다운 작품이 되지는 못해도 가장 솔직하게 나 자신을 직면하고 그린 연필그림이었다. 여러 점들을 만나도록 하며 고민들을 이어 풀어나가라는 작가님의 말씀에 이어지지 않는 고민은 어쩌지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매듭마다 튀어 나갈 날개를 달아 주면서 자유를 느꼈다. 어디든 빠져나갈 곳은 있는 거야. 어떤 일이 생겨도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최선이 해결책일 뿐, 더 나은 건 없다. 나에게 그 최선은 그것이 가리키는 미지의 다른 방향이다. 일단 디디면 다른 자유는 가지 않은 길로 남을 뿐이지만 선택을 믿고 몰입하며 삶을 맞춰간다.


징징대며 이번 가을을 보내다가 마지막 그림 수업에서 정신을 차린다. 대체 나는 나를 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건가. 내가 아닌 나를 자꾸 잡아다가 슬픔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을이 그러래서?


그래도 이 가을에게 감사하다. 낯선 버전의 나는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 자신을 드러내도록 용기를 주었다. 9월의 글쓰기는 헝클어지고 불안한 기억들을 잘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불안할 때마다 무작정 써보자 하는 용기를 여러 작가님들께 얻었으니 이 또한 크게 감사할 일이다.


나답지 않은 가을의 칭얼거림이 날카로운 이성으로 연결되는 9월 그림 수업 마지막 날, 나를 직면했고 다음 장으로 성큼성큼 넘어가는 중이란 걸 알았다. 가장 단순한 게 핵심이다. 보이지 않는 깨달음이 본질이다.


다시 나를 꽁꽁 챙길 수 있는 겨울을 기다린다. 겨울에는 필요 없는 감정 소모가 없다. 깃을 여미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겨울이 좋다. 이건 고민이라기보다 희망이다. 희망을 잇고 방해받지 않도록 어둠을 희망의 얼굴로 걸어둔다. 당분간 포커페이스로 나에게 집중하겠다.


에일듯한 칼바람에 숨을 훅! 들이쉬면 콧속이 살얼음으로 얼어 베일듯한 그 쾌감을 주는 겨울, 그 겨울에 나 자신을 죽일 듯 시험하며 결국 살아남아 봄, 여름, 가을을 지내는 힘을 주는 겨울이 오고 있다.


다들 잘 살아내길 바란다.



그림 - 고민 잇기, 연필심 마음그림 by 희수공원 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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