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Sep 29. 2023

성묘 가는 길

여든네 번째 글: 성묘 가다 온갖 생각을 다하다.

차례를 끝내고 집을 나섰다. 고령에 있는 부모님 묘소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30km 약간 넘는 거리라 명절에 이동하는 것치고는 어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다. 운전하는 아내가 애를 좀 먹긴 하겠지만, 40여 분 남짓이라 금방 갈 수 있다.

지난 설 명절에는 사정이 생겨 못 갔으니 꼬박 1년 만의 발걸음이다.


설레거나 혹은 그래도 1년 만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니 마음이 남다르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마음이 무겁다. 딱히 이유는 나로서도 알 수 없다. 거의 18년 가까이 몸에 익어 왔던 명절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서서히 몸이 굳어가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차례로 지나가고 카오디오에선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몸은 점점 빳빳해진다. 이것만 끝나면 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며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본다.


며칠 전 썼던 글에서처럼 나는 어딜 움직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점점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나 수다 떠는 걸 즐기고,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걸 좋아했던 성격이었다.


하도 사람들에게 듣다 보니 심심풀이로 MBTI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었다. 원래 그쪽으로 관심이 없으니  테스트 결과를 카카오톡 프로필 화면에 올려놨다. INFP.

그런데 지금 우리 반 학부모님들 사이에선 내 성향이 극 E라고 소문이 나 있다는 얘길 들었다. I와 E, 정반대의 성향 두 가지를 갖고 있거나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겠다.


이 세상에 거저 이루어지는 건 없다고 믿는다. 어느 한쪽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나 또한 그렇게 되어갈 뿐이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아내의 말처럼 아내는 나와 함께 살아서 힘겹고 빠듯한 삶을 살게 되었다. 죽는 순간까지 형편이 나아질 게 없는 삶일 거라고 했다. 굳이 대거리를 하지 않는다. 완벽히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없지만, 틀린 말이라고 여길 수도 없으니 그냥 듣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아내와 살면서 난, 내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낭만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아내는 전생에 장군이었을 거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성격적인 측면만 본다면 아내는 남자, 나는 여자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난 밖에 나가면 굉장히 수다스러운 사람이 된다. 기회만 되면 수다로 에너지를 털어낸다. 그러고 집에 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성묘 가는 길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독자 천 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