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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Sep 30. 2023

두려운 단절

10월 한 달, 커피를 끊기로 했다

일 년 중 한 달씩 커피를 끊곤 했다. 최근 몇 년, 잊고 살았던 끊어보기를 다시 시작한다. 




미치도록 좋은 것을 끊는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거다. 그럼으로써 다시 새롭게 만나 더 사랑하게 된다는 거다. 나는 금단 증상을 즐길 것이며 다시 만났을 때의 그 경이를 맛볼 것이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시간을 자주 경험하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희미한 인식 같은 거다. 최근 꿈인 듯 아닌 듯 잠을 잔 건지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작스러운 현기증에 정신이 빠져나가는 듯한 신체적 소진을 겪었다. 


커피 샷을 계속 추가해 가며 끊어지지 않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스뿌레쏘의 진한 깊음과 뜨거운 아메리카노 더블샷 추가가 주는 행복이 습관으로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그럴 때 한 달쯤 커피를 끊었었다. 


오랜만의 그 한 달, 10월을 앞두고 두렵다. 하지 말까. 10월을 하루 앞두고 금단 증상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있다. 새벽 3시에 시작해 오늘 서너 잔의 진한 커피는 마실 때마다 '내일부터야' 단단히 다짐해야 한다. 몇 번의 '하지 말까'로 마음이 흔들릴까. 나는 이미 나의 감시자가 되었다. 


첫날, 둘째 날이 가장 힘들다. 깨질듯한 두통으로 증상이 시작되면 저항하지 않는다. 이게 없음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그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나중에 더 진하게 시작할 수 있다.


첫 일이 주 정도 두통이 희석되는 기간을 거치고 나면 외로움이 몰려온다. 없음이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서서 앞으로도 없을 수 있다며 눈앞에 너울거린다. 계속 없다면 견딜 수 없다는 걸 안다. 커피 향이 나는 걸음마다 멈춰 서서 주먹을 꼭 쥔다. 거리마다 커피 향이 넘친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잰걸음이 반복된다. 아, 마시고 싶다.


일주일 정도 남기고는, 초월한 듯 눈빛을 하고 나머지 감각은 있음으로 올 순간의 희열에 흥분하기 시작한다. 기다림을 여행처럼 시작한다. 마셨던 커피들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고, 맛난 커피를 만들었던 카페를 세어 가면서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오히려 걸음을 늦추며 천천히 그날로 다가간다.


31개의 10월을 잘 보내고 11월 1일 수요일, 커피 향이 근사했던 그 카페에서 에스뿌레쏘를 마실 것이다. 


벌써 난 그 커피 향에 행복하다. 



사진 - 해로커피 에스뿌레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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