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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3. 2023

시간은 간다.

여든아홉 번째 글: 어찌 되었건 간에 시간은 가게 되어 있다.


지난 9월 27일 저녁때까지만 해도 나름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6일간의 연휴,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이런 절호의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요? 뭔가 굵직한 일을 할 시간은 빠듯하다고 해도 어지간한 일 정도는 능히 해낼 수 있는 그런 시간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6일간 제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말입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해도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써놓은 글들이 몇 편 있었습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그냥 쓰다 보니 그렇게 적지 않은 글들이 모였고, 차근차근히 읽어 보니 그 정도면 응모해도 되겠다 싶어서 연휴 계획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제가 발행한 브런치 북은 열 권 남짓이지만, 이번 프로젝트에 응모하겠다고 마음먹은 브런치 북은 두 권입니다. 하나는 '교육 읽어주는 남자'이고, 나머지 하나는 '명언과 함께 떠나는 글쓰기 여행'입니다. 제목을 짓느라고 꽤 고생을 한 건 맞는데, 지금 다시 제목을 읽어봐도 촌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뭐, 그래도 다시 손댈 생각은 없습니다. 더 고민한다고 해서 지금의 제목보다 더 나은 제목이 나올 거라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도 제목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더는 힘을 빼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브런치 북에 들어있는 글의 내용에 자신이 있다는 말로 들릴 테지만, 사실 그건 자신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 따위로 때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 제 브런치 북을 읽고, 어떤 이는 뭐 이딴 걸 글로 썼냐고 할 수 있을 테고, 더러 어떤 이들은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입니다.

원래 이런 목적으로 브런치 북을 발행한다면 쏟아지는 그 많은 브런치북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주제나 소재에 있어서 차별화를 가져와야 하지만, 그것 역시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그냥 현재의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글을 쓰다 보니, 또 가장 잘할 수 있는 소재를 골라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되고 만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저의 브런치 북을 읽게 될 사람들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엿새의 연휴 기간 중 앞의 이틀은 사실상 준비하느라 시간을 다 날렸습니다. 차례 준비, 그리고 차례에 이어 성묘까지 갔다고 처가에 들렀습니다. 갔다가 집에 오니 저녁 10시경, 그렇게 고스란히 이틀이라는 시간이 저의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 나흘이 남았으니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어딜 가지 않고 집에 남아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함께 있는 가족들의 존재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일만 하고 있는데도 제 경우엔 분명 그랬습니다. 그냥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분산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마 글을 쓰시는 다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틈틈이 작업에 전념했습니다. 밥 먹을 때가 되면 거실로 나가 밥을 먹었고, 그 자리에서 설거지를 마쳤으며, 방으로 돌아올 때에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결국은 첫 번째 브런치 북을 완성해 프로젝트에 응모했습니다. 총 11개의 글로 묶인 '교육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24년째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경험을 살려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 북입니다.


그러고도 다섯째 날이 될 때까지 뭔가를 자꾸 끼적이기는 했는데,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섯째 날에 꽤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브런치 북의 글의 분량이 첫 번째 것의 거의 두 배 정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더 자유롭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글을 쓴 날이었습니다.


종종 가는 집 앞 파스쿠찌에 들러 노트북과 휴대폰을 펼쳐 놓고 2시간 반 정도 신나게 글을 썼습니다. 쓰는 동안 자주 매장 안을 둘러봤습니다. 사람들이 빼곡히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얼른 짐을 챙겨 밖에 나와야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피 전문 매장을 갈 때마다 아내도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합니다. 매장 안에 사람이 많이 찬다고 생각되면 알아서 나오라고 말입니다. 저는 아직 한창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이제 우리도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작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매장 안에는 저 외에는 다른 사람이 아예 없었습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자리를 피해 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하고 좋았다고나 할까요? 물론 매장 관계자는 속이 쓰렸겠지만 말입니다.

2시간 반 정도 있으니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더 있지는 못하겠다 싶어 짐을 챙겨 나와 집에서 두 번째 브런치 북, '명언과 함께 떠나는 글쓰기 여행'을 발행하고 내친김에 응모까지 마쳤습니다. 들어가는 글 2편, 본 글 19편, 나오는 글 1편, 총 22편의 글을 묶어냈다.


처음에 의도한 할 일을 다 끝내서 그런지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늦잠도 자고 게으름도 좀 피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곧 또 3일간의 연휴가 다가오네요. 이번에 발행하고 프로젝트에 응모한 브런치 북을 다시 읽어볼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어쨌거나 두 번 다시 쳐다보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어차피 읽으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나올 테고, 수정을 하려면 응모를 취소하고 고쳐서 다시 응모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그 절차가 그리 번거로운 건 아니지만, 차라리 그럴 바에야 새로운 글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3일간의 연휴에 뭘 해야 할지 또 계획을 세워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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