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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6. 2023

현실과 이상에서 갈등하는 예술가들

007: 조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을 읽고……

이렇게 좋은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공교롭게도 품절에 그것도 모자라 어떤 곳은 아예 책 표지조차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정말 많이 읽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정말 좋은 책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책일 확률이 높다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 책의 표지는, 청운의 뜻을 안고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북으로 북으로 향했던 그네들의 꿈과 희망이 산산이 부서진 그 핏빛을 연상시키는 듯한 색깔의 표지였습니다.


예술은 현세를 등진 듯이 뭔가 이상향을 그리는 듯 하지만 철저히 현실을 바탕으로 두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지고한 예술을 표방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가 이미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한은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이기도 하니까요. 자고로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여건 중에서도 특히 본의 아니게 정치적인 환경에 적지 않은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종종 그들의 창작품은 정치적인 선동에 이용되곤 합니다. 겉으로 내세워진 창작의 자유란 허울 좋은 명분 못지않게 조금이라도 틀에서 어긋나면 검열이라는 칼날이 드리워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자신 혹은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이나 사회에 주저 없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이유도 아마 이런 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해방 이후 혼탁한 시기에 순수 예술에 모든 걸 바쳤던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건 어쩌면, 예술 운운하면서도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입만 혹은 머리만 살아있는 이런 지식인들-그래서 예술 무용론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에 대한 사회적인 멸시와 차가운 시선들이 아니었을까요? 혼란하다 못해 극심한 가난에 찌들어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예술은 그저 배부른 투정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념이다 뭐다 하는 것들 역시 그러한 취지로 읽힐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산 입에 거미줄 칠까 싶겠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인 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념의 윤곽은 이미 드러났고,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갈라진 가운데 그들이 보기엔 우선은, 사회를 이끌어 가기에 적합한 혹은 자신들이 가진 이상향의 예술 세계를 구현하기에 적합한 사회가 다름 아닌 공산주의 사회였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혼란한 시대의 틈을 타 그들은 주저 없이 북으로 북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분명히 그들은 예술지상주의 사회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초기 이념과 정신 그대로를 구현한다면 모두가 잘 살고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믿었고, 그 속에서 그들의 예술혼은 구체적인 작품으로 드러날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체제는 그들이 창작한 혹은 앞으로 창작하게 될 한 편의 소설을, 시를, 노래를, 그리고 연극과 영화를, 주체혁명사상을 선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해 버리고 맙니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예술가란 존재와 예술작품이라는 것 따위는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들의 이념에 부합하는 작품들과 예술가들은 살아남는 반면에, 제동을 거는 이들은 비명 속에 사라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생존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을 갈망하는 그들은 두 가지 시련을 한꺼번에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한에선, 그들의 예술 정신엔 아랑곳없이 오직 주체사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만 그 활동 성과가 인정되었는가 하면, 남한에선 반공 이데올로기 확산으로 인해 단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들의 뇌리에서 잊힐 수밖에 없는 그런 시련을 고스란히 당해야 했습니다.


글의 소제목이기도 해 직접 인용하기는 그렇지만, 이 소제목 속에 나름 그 월북예술가들의 특징을 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어 옮겨 보고자 합니다.


임화 운명에 동화되어 버린 낭만주의자 

한설야 하나의 선택을 향해 달려간 북방인 

백석 파란 혼불처럼 떠도는 문학사의 고아

정현웅 천년의 시간을 되살려낸 역사화가

이쾌대 장엄한 역사의 서막을 알려준 화가의 손

김순남 민족의 미래를 노래한 정결한 혼의 음악가

임선규와 문예봉 극작가와 배우, 엇갈리 부부의 운명

황철 추억으로 남아 있는 인민의 배우

김용준 자살과 초탈 사이에 선 예술가의 표정

이태준 이상적 사회주의를 꿈꾼 뛰어난 문장가

박태원 역사소설에 꿈을 묻은 모던 보이


구체적으로 이들의 행적을 여기에서 더듬어 볼 수는 없습니다. 책의 분량도 그리 두껍지 않은데, 그건 그만큼 그들의 행적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 너무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예술적 재능이라는 측면에서나, 개개인의 사고방식이라는 측면에서나, 그들이 한순간에 행하고 만 오판만 없었더라면, 본인의 예술적 성취는 물론 우리의 예술이 지금에 비해 더욱 바람직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제 서서히 그들의 이름이 알려지고 그간에 그들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내놓았던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보이고 들려지기 시작하고 있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어 좀 더 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거란 사실입니다. 그들에 대한 배경지식도 턱 없이 부족한 데다 때로는 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니, 그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마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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