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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12. 2023

방송인 철학

백한 번째 글: 방송이 미치는 악영향

요즘 TV를 시청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애초에 TV라는 것이 시간을 소일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지금 하고 있는 딱 그 정도의 역할 만으로도 충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요?

물론 제가 요즘 방영되는 다양한 TV 프로그램들의 면면에 대해 일종의 평론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평범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굳이 그런 역할을 감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은 챙겨서 보면 되고, 그렇지 못한 프로그램이라면 안 보면 그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제가 이 자리에서 난데없이 '방송인 철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특히 요즘의 몇몇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점에 대해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방송, 즉 TV 프로그램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일이 제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정도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는 송출되는 화면 속에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말을 자막으로 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사생활을 공공연하게 들여다보는 틀을 도입한 것입니다.


먼저 자막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사실 자막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청각장애인에 유용한 시스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면 아직은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을 위해서 필요한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TV 프로그램 속에 자막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출연자들의 말 중에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나 꼭 강조했으면 하는 말 정도만 자막을 넣는가 싶더니 어느새 모든 출연자들이 하는 말 전부를 자막으로 처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게다가 제작진들의 일종의 독백이나 프로그램 제작의 방침까지 가세되어 그야말로 자막으로 인해 시야에 혼란이 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저 자막을 넣기만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출연자들의 목소리가 작은 경우나 주변의 소음 때문에 출연자들이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때에는 제법 자막이 유용한 역할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막은 그런 기능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에 더 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올바른 언어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맞춤법의 파괴 현상무분별한 외계어의 남발 때문입니다. 어쩌면 성인보다는 청소년이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접하는 매체가 TV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의 TV 프로그램이 선도하는 듯한 맞춤법의 파괴 현상과 무분별한 외계어의 남발은 반드시 되짚어봐야 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말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습니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습니다. 바로 그런 악영향을, 아직 언어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타인의 사생활을 공공연하게 들여다보는 틀을 도입한 점입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습니다. 어쩌면 이 프라이버스라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지켜져야 하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경계와 원칙이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시청자가 먼저 나서서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면 그 자체로 문제일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돈이라는 논리에 밀려 당사자가 스스로,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사생활을 만천하에 공개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범죄와도 같은 행위들이 TV 프로그램 속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맞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관음증을 조장하고, 다소 변태적인 기호도를 충족시킴으로써 야릇한 쾌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의 이름을 들먹일 이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명의 패널들이 나와 모니터를 보고 그 속에 송출된 모습에 대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그런 프로그램들은 모두 이런 유형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들이 상대방의 동의를 기반으로 한 합법적인 관음증 충족보다 더 심각한 점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전혀 평범하지 않게-이때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의 어떤 상태가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게 만들고, 그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안겨준다는 점이겠습니다.


저는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확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TV  속에서 자신들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 것입니다.

간혹 프로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특히 화면에 송출되는 경기에 임하는 과정에서 비매너적인 행동을 보여주면 여지없이 징계에 착수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이건 그 프로 운동선수를 보면서 꿈을 키우고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방송에서도 이런 점에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최선을 다하고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거액의 돈을 벌어들인다면 오히려 우리가 그에게 박수를 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 선을 넘어버린 느낌입니다.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TV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사람이라면 죄다 해봐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하면서 살지 않으면 자신이 마치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그릇된 생각을 심어줄 우려가 큽니다. 그게 바로 대중매체, 특히 그중에서도 TV의 위력인지도 모릅니다.


사진 출처: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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