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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08. 2023

내가 떡잠이면 누구 하나는 새우잠

009: 송경동의 『꿀잠』을 읽고 ……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마치 수해집중 지역에 평소에는 결코 입지 않을 웬 작업복 같은 차림으로 나타나 그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듯, 가만히 앉아 그곳 관공서 관리들로부터 브리핑을 듣는 정부의 고위 공직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음. 당신들 그렇게 어렵게 살고 있단 말이지. 가만히 들어 보니 이거이거 도무지 사람사는 꼴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고 있지, 참 대단하단 말이야, 당신들?'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그래서 차라리 저는 그런 처지가 아니니 다행이라는 위로까지 하면서 아마도 그렇게 작품을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송경동 시인은, 몸소 현장에서의 온갖 잡일들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데 급급한 그 신세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가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에세이집까지 냈을까요?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사실 투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것이 시어가 될 수 있겠느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명색이 시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아름다운 말이나 멋드러진 비유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건축 및 토목 자재 용어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오는 글, 그것이 바로 송경동 시인의 시입니다.


지하 토목공사 때 파 들어갈 땅 주변 붕괴를 막기 위해 수직 H형 철골빔을 박는다. 이것을 파일이라 한다. 땅을 파 들어가며 이 파일들이 주변의 지압을 견디게 하기 위해 다시 철골빔을 마주본 파일 사이 사이에 수평으로 대준다. 이것을 버팀목이라고 한다. 20~30m짜리 버팀목은 없어 두 토막 내지 세 토막을 이어야 하는데, 이 연결 마디의 꺾임을 막기 위해 두 버팀목이 맞닿는 부위에 패드처럼 쇠판을 얹는다. 이것을 연결판이라고 한다. 연결판은 서른 두 개의 볼트로 두 토막을 이어 휨을 방지해준다. 이때 볼트 구멍은 꼭 드릴로 뚫어야 한다. 산소절단기를 댈 경우 열변형으로 버팀 강도 저하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꼭 산소절단기를 이용해 그 구멍을 뚫었다. ☞「설명하기 참 힘들다」어느 지하생활자의 보고 中에서, 본 책 18쪽     


과연 이 속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뚜렷하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아마도 삶의 애환이라느니, 노동자의 서글픔이라느니, 하루살이 인생들의 비애라느니 하는 것들이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가끔은 천시하고 멀리하려는 사람들, 제대로 이름 있는 직장도 가지지 못한 채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그들을 가끔은 손가락질했던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너 공부하기 싫지?"
"응, 공부는 재미없어?"
"좋아, 그런데 말이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저기 지저분하게 땀 흘리고 있는 사람 보이지? 공부 안 하면 너도 저 사람처럼 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와 손을 잡은 채 걸어가고 있는 어떤 엄마의 실제 대화 내용입니다. 그 더운 여름에 지저분할 정도로 땀을 흘려가며 일하던 한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도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힘들고 더러운 일 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 손가락질까지 받으면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중감조차도 가지지 못한 채 살아왔던 그들도, 사실은 엄연한 사람이라는 걸, 비록 손톱 밑에 시꺼먼 때가 가실 날이 없고, 이젠 그 때마저 하나의 굳은살이 되어버린 그들 역시 우리가 가진 욕구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왜 하필 이 시집을 읽고서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바지 디쳐밀고 아랫도리에 산봉오리 세웠네
지나가던 처녀들 낯봉오리 꽃봉오리 보기 부끄러워
삽자루로 확 밀쳐버리려다가 참네
밥만 먹곤 못 살아
일만 하곤 못 살아
누구라도 살아 그 마음에
꼿꼿한 욕정 하나 없으리 ☞「이총각뎐」中에서, 본 책 34쪽     


그런 그들의 삶은 솔직하게 말해서 한 마디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그이는 부끄럼도 없이 휴지통을 뒤져 내가 방금 먹고 버린 종이컵이며 빈 캔 따위를 주워 싣는다 가슴 한 가득 안은 빈 캔에서 오물이 흘러 그의 젖은 겉옷을 한 번 더 적신다 ☞ 「막차는 없다」中에서, 본 책 40쪽


아마도 그렇게 살라고 하면 단 하루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만큼, 아니 살지 못할 만큼 그들의 삶은 적어도 저의 삶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더러움이, 그리고 조금도 닮고 싶지 않을 만큼의 그 추함이 그들에겐 삶의 버팀목이 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이 못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그래서인지 송경동 시인의 그 고백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제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을 노래하고, 자연과 사물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고, 인생을 거론하는 것만이 시(詩)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은 죄다 응축하여 한 두어 줄의 여백에 써 넣는 것만이 시가 아니란 것도 말입니다.


잡범 징역 두 번 살며 배운 거라곤
내 밥그릇 두 개면
누구 하난 밥그릇이 없다는 것
내가 떡잠이면
누구 하난 새우잠이라는 것
낙하산 타고 들어온 놈 있어
세월 가도 왈왈이 되지 않는다는 것
싸우려면 끝까지 싸워야지
도중에 그만두면 영원히 찌그러진다는 것  ☞「마음의 창살」中에서, 본 책 61쪽     

 

모두에게 공평하게 밥그릇이 돌아가는 세상을 위해, 모두가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우다 죽어 간,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름없이 죽어가는 숱한 존재들에게……, 저의 나약함으로 인해 함께 싸울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길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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