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다섯 번째 글: 글쓰기도 고된 노동이다?
오늘이 마침 한글날이라 학교에 출근하지는 않지만, 눈을 떠 보니 1시 직전이었습니다.
'이런, 제기랄! 완전히 망했네, 망했어.'
욕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많이 자고 싶어서 잔 것도 아닌데, 이럴 때에는 가족의 나름 무관심한 듯한 배려가 얄미워지기도 합니다.
'좀 깨워주지 그랬어!'
보는 가족마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가만히 있으면 얻어 듣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굳이 청할 이유는 없는 것이겠습니다. 혼자서 입이 댓 발이나 나와 얼른 아침 겸 점심을 걸치고, 밀린 집안일 몇 가지를 끝냅니다. 설거지, 바닥 청소기로 밀기, 그리고 물걸레로 바닥 닦기…….
마치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신속하고 나름은 정확하게 해야 할 일을 마칩니다. 이제 다 했으니 글이나 좀 써볼까 했더니 실내를 가득 메운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가 제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후다닥 일어나 음식물 쓰레기를 챙기고 내친김에 재활용 쓰레기 배출 팩을 들고 부스스한 머리 상태로 일단 밖을 나갑니다. 이러다 아는 누구라도 만나면, 시쳇말로 '폭망'입니다만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뭐, 보면 보라지! 잘 보일 사람도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아는 사람은 만나고 맙니다.
"쓰레기 버리러 가세요? 아이고, 자상하기도 하셔라!"
정말 좋은 뜻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이겠지만, 어쩐 일인지 제 귀엔 이렇게 들립니다.
"자식아, 이제 일어났냐? 그러다 하루 다 가겠다."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 왜 이렇게 많이 잤을까, 하고 말입니다. 평소에 4시간 30분씩 소요되는 대중교통 통근 탓에 평일이면 피로가 누적되긴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기상하게 되면 하루가 거의 다 간 것 같다는 허탈감이 들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게 됩니다. 물론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그래 봤자, 한 일이 분쯤 될까요? 얼른 서두르지 않으면 정말이지 하루를 꼴딱 허망하게 보낼 수 있으니 그때부터는 모터 달린 기계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왜 이렇게 많이 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옛말 틀린 말 하나 없지요.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더니, 어제와 그저께 그렇게 글이 잘 써진다고 신나게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며 그 많은 글을 쓴 여파인 듯합니다. 육체적인 피로감은 거의 없었지만, 어쨌거나 글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가 혹사한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쉬어야 하겠지만, 정작 저는 또 할 일을 끝내자마자 집 앞 파스쿠찌에 앉아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이제 50을 약간 넘겼습니다. 언제까지 살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말입니다, 앞으로 최대한 글을 쓸 수 있는, 제게 남은 시간이 대략 40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느긋하게 쓰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쓸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책을 출간한다면 좋을 테고, 행여 등단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무 욕심 없습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때 마냥 글만 쓰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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