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시, 개여울 첫 문장의 의미
개여울은 순우리말로 개울가 여울목을 말한다. 여울목은 조용히 흐르는 물이, 폭이 좁아지거나 얕아져서 턱이 생겨 물결이 거칠어지는 곳이다. 개여울은 내가 좋아하는 김소월의 시(詩)이기도 하고, 잘 배우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시구절을 가만히 읽어보며 노래하며 그 서정을 읽는다.
개여울 by 김소월(1902-1934)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장 익숙한 김소월의 개여울은 현대적인 언어로 잘 다듬어져 불려지는 노래 가사다. 한 소절씩 심정을 상상하며 피아노 리듬에 얹다 보면 피아노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첫 소절의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에 갑자기 낯설어 멈추어 섰다. 이게 무슨 뜻이지?
당신은 어찌 지내고 계시는가요?
당신은 왜 그러시는 건가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어 그렇게 하신 건가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뭔가 잘못된 걸까요?
형태가 달라지면 의미도 바뀐다. 묘하게 비슷한 정서가 전해져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다른 의미다. 쓰인 글과 강세와 억양을 얹은 말과는 또 달라서 갑자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자 당황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혹은 지켜보며 개여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말일 수도 있다. 또는 떠나간 사람에게 개여울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간절하게 묻는 말일 수도 있다. 개여울에 앉아 있는 사람과 그 밖의 사람 그 안의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은 모두 다르다.
이해되지 않는 답답함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연에서 그런 부탁이냐고 스스로 떠나간 사람의 마음을 가늠해보는가 보다. 나는 대강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거였다.
한국학 연구 자료집에서 논문 자료 (조강석, 2018) 하나를 찾아냈다.
개여울의 1922년 '개벽' 초간본과 1925년 김소월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수록본이 그 언어와 톤을 수정하여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 눈으로 봐도 4연의 '닛자 합니다'와 '생각합니다'는 완전히 다른 언어 다른 의미다. 또한 5연의 '부탁이지요'와 '부탁인지요'도 어느새 질문으로 바뀐 다른 심정이다.
김소월은 왜 이렇게 바꿨을까.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첫 심정과 3년의 시간이 흐른 후의 심정이 다르다. 희석되었다기보다 정말 그런 거냐 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인가.
논문을 꼼꼼하게 읽지는 않고 두 개의 개여울 시를 옮겨 두었다. 문장마다 단락마다 타자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지만 꼼꼼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화자와 청자를 다양하게 바꾸면 시가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는 건 맞다. 갑자기 시가 어렵고 두렵게 느껴져서 논문을 덮었다. 이제까지 겉만 이해하고 나 혼자 빠져 아는 척했던 두려운 순간들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오늘 단지 저 첫 문장의 의미를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알아가면 갈수록 누추하고 부끄럽다. 일단 되돌아간다. 지금은 머리와 가슴이 막혀 더 이해하려고 해 봤자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의미의 첫 문장으로 귀결한다.
3자가 나에게, '당신은 개여울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가요?'
나를 떠난 사람에게 내가, '당신은 내게 왜 그랬던 걸까요?'
아, 괴롭다. 머리가 맑아지면 다시 돌아오리라.
사진: Cristóbal del Valle_Pixabay
참고 자료: 조강석 (2018). 김소월 시의 목소리와 타자성 연구 -「개여울」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제48집 197~222쪽
노래: 개여울 by 아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