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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13. 2023

마라탕 먹기

백네 번째 글: 몸에 안 좋은 게 맛은 좋다.

모처럼만에 아들놈과 볼일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마침 집에 전화하니 나간 김에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까지 먹고 오라고 합니다. 일단 늘 있는 일이 아니니 밖에서 먹고 오라고 하면 그 말을 듣는 게 현명합니다.

"뭐 먹을끼고?"

"아빠는 뭐 무꼬 싶은데?"

참고로 저희 아들이 나이에 비해 사투리가 심합니다.

"글쎄, 별로 땡기는 기 없는데."

"그카믄 치킨 무까?"

"치킨은 무슨, 그기 밥 되나?"

"그라믄 뭐 무꼬 싶은데?"

"니는?"

"혹시 마라탕 무봤나?"

"마라탕? 안 그캐도 요새 그거 마이 묵는다 카던데, 그거 물(먹을) 만하나?"


솔직히 비주얼로는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짬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마치 물 위에 기름이 뜨듯 둥둥 떠 있는 기름 자국들이 식감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가게 점원이 마라탕을 들고 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 오늘 한 번은 먹어준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젓가락으로 건더기부터 건져 먹으려니 아들이 국물부터 떠먹어 보라고 합니다. 녀석도, 녀석의 친구들도 모두 그런 식으로 마라탕을 영접했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시키는 대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예상했듯 기름기 때문에 입이 미끌거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첫 맛은 비교적 순탄했습니다. 숟가락이 그릇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어떻노? 물 만하제?"

"그럭저럭 개안네."

"다음에 또 무러 오자."

"그래, 그라자."


그게 대략 2년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라탕은 저에게 꽤 자주 찾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고작 저런 음식을 돈 주고 먹냐며, 내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없을 거라며 큰소리쳤던 선입견이 무너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어도 적어도 아들과 저, 밖에서 단둘이 밥을 먹을 때에는 무조건 마라탕을 먹습니다.

글쎄요, 아내는 몸에도 안 좋아 보이니 가급적이면 먹지 말라고 합니다만, 이미 입맛을 들인 저로서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즐겨 먹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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