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Oct 13. 2023

3일 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014: 정현주 외 9인, 『삼.곱하기.십』을 읽고……

"3일 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 무얼 하고 싶은가요?"

참으로 도전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 책을 폈을 때엔, 전 이 질문이, 단순히 죽음을 앞둔 어떤 사람들이 그들에게 남겨진 인생에 있어 3일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들을 담아 놓은 책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문득 옆에 있던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보고-죽음이란 건 너무 우울하니 그 부분을 쏙 빼고 최대한 부드럽게- 싶었습니다.

"당신,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3일의 휴가를 준다면 뭘 하고 싶어?"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딱 한 마디 합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음. 그럼 당연히 제주도로 떠나야지!"

실행될 가능성이 지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 3일이라는 달콤한 혼자만의 휴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겨운지 연신 미소를 짓던 아내를 보며 내친김에 저 역시도 종이를 한 장 펼쳐서 호기 있게 적어 내려가 봅니다.


나에게 남겨진 3일, 무얼 하며 지낼까?

① 첫째 날 : 지나간 사람들과 묵은 감정 모조리 털어내기 ☞ 아무리 멀리 있는 사람-물론 그들과는 전화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가서 지금껏 못다 한 얘기가 있으면 다 나누고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웃으면서, 하지만 조금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눌 것. 만약 그 사람이 내게 따지거나 비난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다 들어줄 것.
② 둘째 날 : 아내와 1박 2일로 여행 가기 ☞ 다 아이들을 어른들에게 맡기고 가까운 곳이라도 꼭 단 둘이 여행을 다녀오기. 만약에 아내가 혼자 가길 원한다면 혼자 보내 줄 의향 있음.
③ 셋째 날 : (여행에서 돌아와 허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어차피 죽을 텐데 허리 부러지는 것쯤이야……) 우리 아이들과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


이렇게 쓰고 보니 갑자기 3일째 되는 날이 너무 바빠질 것 같았습니다. 고작 9시간 정도만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어차피 힘을 다 빼놓아야 죽을 때 편하게 죽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깨끗이 목욕재계하고 아내와 아이들 몰래 편지를 써 놓고 이불을 덮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꽤 그럴듯한 시나리오 같지 않은가요?


제가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아무튼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폈는데……. 이런, 방향을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습니다. 처음 제가 생각한 그게 이 책의 주된 테마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그런 광고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뭐, 이런 의미의 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가 선택할 일은 지극히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3일간 할 수 있는 일……, 어쩌면 그와 같은 3일은 좀처럼 오지 않을지도, 아니 사람에 따라서는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쓴 10명의 저자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3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도 서슴지 않고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물론 어느 한 사람도 똑같은 장소를 택한 사람이 없다. 그냥 피상적으로 우리가 흔히 가고 싶어 하는, 제주도라든지 일본의 어느 온천, 혹은 유럽의 어느 곳 등의 장소가 아닌, 어쩌면 그냥 우리 주변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그런 곳들을, 묻혀 있던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곳들을, 유년 시절의 기억이 묻어 있는 그런 곳들을, 그들은 선택했습니다.

                    

하나같이 그들은 요란한 기색도 없이 조용히 그곳에 가서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금 새로운 자아를 찾아서 돌아오는 여정으로서의 길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두가 다 여행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지인의 작업실로 꽃을 들고 찾아가고, 또 어떤 이는 열심히 요리를 했으며, 또 다른 어떤 이는 여행경비회수를 위해 구입한 아이템을 판매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그저 3일 간 무위도식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외부로의 여정이든, 자신의 내면으로의 여정이든 모두가 다 소중한 여행으로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멋지게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일상은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그 지쳐가는 과정 속에서 자칫하면 우린 우리의 자아를 잊어버리거나, 혹은 아예 잃어버리고 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우린 살아가면서 제법 그래도 정신이 말짱한 순간에 늘 의식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돼! 뭔가 변화가 필요해!"

하지만 어쩌면 그건 마음뿐인지도 모릅니다. 물속에 있으면서 옷이나 우리 몸이 물에 하나도 젖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 그 자체이니까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실종된 자아정체성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여행이 아닐까요?


여행은 '만남'과 '이별'을 전제로 합니다. 이별은 그동안 고민하던 것들과 자질구레한 자신의 일상-정말이지 하루에도 수십 번은 내팽개치고 싶을 정도로 환멸스럽기까지 한-과의 이별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숨 돌릴 틈 없이 살아온 껍데기뿐이니 육신으로서의 허상적인 자아와도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원래, 이별은 슬픈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별은 제 자신의 가슴속 어딘가 한편이 뜯겨 나가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한 지경에 이르면 한동안 실의에 빠져, 떠나간 그 무엇을 오래도록 갈망하며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별은 전제로 한 여행은 절망감만 안겨주진 않습니다. 떠나보내야 할 것은, 요즘 시쳇말로 쿨하게 보내버리고, 새롭게 맞이할 것은 또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는 성대한 의식으로서의 '만남'이 또 하나의 매력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10명의 저자들은 여행을 통해서 그런 이별을 선언했고, 돌아와서는 남은 날들을 이끌어갈 새로운 추진력을 쉽게 만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각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저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말없이 그리고 끝없이 '아무것도 몰라도 좋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따라오기만 해!'라고 하는 듯 저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다지 길지 않은 문장들이 읽는 눈을 덜 피로하게 한 것은 물론, 곳곳에 실려 있는 사진들은 책을 덮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허락했으며, 그 사진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쉽게 넓힐 수 있었다고 감히 장담하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딱 한 번 바뀌었다는 한글 맞춤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