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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4. 2023

순수하고 그저 맑기만 한 아이들의 세계

015: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를 읽고…… 

현덕의 작품 전반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이나 구인회 등 문학단체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6.25 전쟁 중 월북한 이후 그 소식이 끊어져 베일에 가려진 작가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러한 이력 때문에 그의 작품은 금서 아닌 금서가 되어 그 누구도 그의 작품을 발굴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이 책을 편집한 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 씨가 각고의 노력으로 발굴해 비로소 우리들에게 알려지게 된 작품입니다.


『너하고 안 놀아』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대로 글로 담아낸 동화집으로서, 여기에 나오는 노마, 기동이, 똘똘이, 영이는 식민지 시대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사실, 희망이라기보다는 동심이 더 어울릴 테지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어린이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엄연한 빈부의 차이가 있지만, 그에 따른 갈등을 놀이로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얘기들입니다. 물론 이 점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시각에서 그렇게 해석되었을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읽고 있는 내내 훈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크게 내용과 형식 면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내용적인 면을 살펴보면, 이 책은 일상적인 아이들의 삶이 배어 있고,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정한, 그러나 조금도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분방한 놀이 문화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아마도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노예와 다름없는 우리네 신세를 한탄하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노마와 기동이와 똘똘이 그리고 영이는 그런 식민지 시대의 서글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암울한 시대상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게 어찌 어린아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절실히 느꼈을지도 모를 정체성의 위기의식을 그들만의 특유한 놀이 문화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분명 이 작품은 미하엘 엔데나 C.S. 루이스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경우처럼 철학적인 깊이를 가미한 스토리들을 바탕으로, 화려한 판타지 세계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이 있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덕은 자신의 문학관을 철저히 간섭하는 문학단체에 속하지 않은 자유노선주의자였던 탓에, 꾸밈없는 진솔함과 진정으로 그들의 나이에 걸맞은 아이일 수밖에 없는 순진무구함을 작품의 곳곳에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형식적인 면을 보면, 이 작품에는 운문이 가진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운율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한 사실이기도 한데, 현덕은 산문답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제된 언어로 시종일관 얘기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반복되는 대화와 그 속에서 무수히도 반복되는 문장들은, 사건이 이루어지는 배경을 눈에 선명히 그려지게 하고, 왠지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리듬감마저 느껴지게 합니다.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 위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느낌을 나타내는 말-의성어와 의태어-을 많이 사용하여 작품의 생생함을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친일행각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문인들 중에서도 적지 않았고, 극심한 탄압이 두려워 자연을 예찬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등 우리의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작품 활동을 펼쳤던 작가들 또한 적지 않았던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도, 솔직 담백한 아이들의 세계를 티 없이 맑게 그려 내어 험난한 그 현실을 헤쳐 나가는 데에 일조했던, 현덕의 작가 정신을 더없이 높이 기리고픈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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