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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16. 2023

어른과 꼰대

백아홉 번째 글: 어른이 되는 길은 힘겹다.

얼마 전 시내 중고서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단 목소리만 들어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내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돌로 만든 벤치 앞에 놓인 2개의 테이크아웃 커피 빈 통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 같았습니다.

"처먹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소위 주위에 있던 젊은것들(?)이 일제히 그 노인을 쳐다보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있으려니 근처에 있던 또 다른 나이 든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습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처먹고 엘리베이터 지지봉 위에 버려두고 가는 놈들도 있다느니, 가정교육이 어떻게 되었기에 애 새끼들이 이 모양이라느니, 여기에 이런 걸 버려두고 가는 놈들은 공동체 생활을 할 자격이 없다느니, 게다가 젊은 놈들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이 꼬락서니지, 하며 애먼 나라 탓을 합니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이 일견 맞다고 치더라도, 그들이 자아내는 풍경은 가히 좋은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은 그 빈 통을 버린 사람들이 과연 젊은 놈들인지 아니면 늙은 사람들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데다, 만약 그냥 묵묵히 그걸 쓰레기통에 대신 버려주는 행위를 그 어른이 선택했다면 훨씬 보기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 어른이 굳이 그걸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애초에 그걸 그렇게 공개적으로 유기해 놓은 사람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뻔히 보고도 버리지 않는 그 어른을 탓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문득 옆을 지나치던 젊은 사람 두 명이 한 마디 내뱉고 갑니다.

"에이 씨발, 개꼰대들!"

남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대신 치워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해낸 어른에게 할 말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때 문득 꼰대라는 말이 귀에 와 박혔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꼰대라는 말 정도는 의미를 알고 있긴 하나, 내친김에 정확히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성향과 이념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는 게,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 2015년 1월 21일 <뉴스타파> 김진혁의 칼럼 <꼰대 vs 선배> 중에서


이 표현에 따르면 방금 전 그 어른은 명백한 '꼰대질'을 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꼰대질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 혹은 그 정도가 지나친 사람이 바로 '개꼰대'가 되는 것입니다. 분명 그 어른의 표현상의 문제는 있지만, 옳은 지적을 해도 꼰대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야말로 서글픈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타인에게 이런저런 지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런 표현이 생길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옳지 않은 말이나 행동에 대해 타인에게 지적을 받는다면, 그리고 그 지적을 받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 테지만 이미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꼰대의 반대말은 비꼰대가 아니라 어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이 아닌 것입니다. 어른이면 어른다운 언행과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나이에 걸맞은 체통과 품위는 자기가 요구한다고 해서 갖추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도 됩니다.

씁쓸하고 또 삭막하기 그지없는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변화해 가는 시대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꼰대가 아닌 어른이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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